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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4일 화요일

데릴사위 정권

[김창균 칼럼] '데릴사위 정권'의 마지막 효도
김창균 정치부 차장 ck-kim@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7.12.0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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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균 정치부 차장
선거는 제로섬게임이다. 한쪽 사정이 좋아지자면 상대 쪽은 형편이 기운다. 그래서 선거에서 맞붙는 양 진영은 거울에 비친 것처럼 반대 모습을 띠게 된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선 이런 대칭 이미지가 깨지고 있다. 지역적으로 영남, 이념적으로 우파(右派)인 유권자들은 정권 재탈환이라는 10년 숙원을 이번만은 반드시 이루겠다고 벼른다. 반면 현 정권의 지지 기반이었던 호남 및 좌파 진영에선 선거에 대한 전의(戰意)가 느껴지지 않는다.
5년 전, 10년 전 선거 때는 한 표를 행사하는 갑남을녀(甲男乙女)들도 선거를 치르는 당사자처럼 눈에 쌍심지를 켜고 언성을 높였다. 술집에서 선거 얘기를 하다 주먹다짐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내 후보’니 ‘네 후보’니 따지는 장면조차 드물다. 승부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운 것이 한 원인이겠지만, 그것만으론 “정권을 되찾겠다”는 쪽과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쪽의 온도차를 설명하기 힘들다.“
12월 19일 선거날 부산, 대구, 광주에서 동시에 ‘이겼다’는 함성이 터져 나올 것이다.” 2002년 대선 때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즐겨 쓰던 레토릭(수사·修辭)이다. 노 후보 자신은 부산 출신이고, 자신을 후보로 낸 민주당은 호남이 텃밭이니 자신이 당선되면 영·호남 두 지역의 공동 승리가 된다는 말이었다.
동화 같은 이 비전은 노 정권 출범 직후부터 정반대로 풀려나갔다. 노 정부는 호남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북 송금 특검을 밀어붙이더니 민주당을 둘로 쪼개 호남 표밭을 분열시켰다. 마지막 결정타는 “호남 유권자가 나를 찍은 건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회창 후보가 싫어서”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었다. 노 정권에 대한 호남 정서는 애(愛)에서 증(憎)으로 옮겨졌다.
호남과 틀어졌으면 영남에서라도 반사 지지를 받아야 했는데 그렇지도 못했다. 오죽했으면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문재인 비서실장(당시 전 민정수석)이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 언론인들을 만나 “노 대통령이 부산 출신이고, 퇴임 이후도 이 지역에서 살 텐데 왜 부산정권으로 인정해주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했겠는가.
좌파 진영도 노무현 정권을 남의 식구 취급한 지 오래다. 자이툰 파병, 한·미 FTA 체결 결정 등을 문제 삼아 노 정권 이마에 ‘신(新)자유주의’ 딱지를 붙여 놓고, 아예 적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진짜 속내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 정권과 거리를 두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1997년 대선 때 영남 유권자들은 “김대중 후보에게 정권이 넘어가면 해코지 당하는 것이 아니냐”고 불안해했다. 2002년 대선 때는 호남 유권자들이 “정권이 되넘어 가면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정권을 쥔 쪽이 ‘선거에 지면 우리는 죽는다’는 심리 상태였으니 선거 분위기가 살벌해 질 수밖에 없었다.
2007년 대선엔 정권을 빼앗길까봐 걱정하는 진영이 없다. 노무현 정권은 영남에도, 호남에도 ‘우리 정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우파는 물론 좌파도 노 정권에 대해 “우리와는 생각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집권 세력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나라의 불행이다. 그래선 국정(國政)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지난 5년 동안 4800만 국민이 그 값을 치렀다.
그러나 노 정권의 ‘왕따현상’은 임기 막바지에 한 가지 순기능을 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사생결단식으로 싸웠던 영·호남이 이번 대선만큼은 ‘뺏고, 뺏긴다’는 강박관념 없이 맞이하게 된 점이다. 영남 출신으로 호남에 장가들었던 ‘데릴사위 정권’이 5년 내내 양가(兩家)에 불효했던 것이 ‘마지막 효도’로 돌아오게 됐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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