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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월요일

엄마. Texas에서12/10.2017

엄마 가신 직후는 내마음에 감각이 없었다.
장례를 모시고난 후부터 늘 가슴이 두근거렸다.
요즘은 엄마를 생각할때 가슴이 축축하고 두근거린다.

잠들때까지 늘 손을잡아 주었는데...
엄마도 내 손가락을 꼭꼭 눌러주었는데.
엄마 기억을 간직하고싶다.
그래도 세월에 씼겨 흐려지겠지만 엄마 기억을 잊으려고 애쓰지는 않으련다.

뉴저지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면 그시간 만큼은 엄마를 잊는거같다.
카페에 앉아있거나 길거리 걸을때면 옛날 같이 지내던생각,
집에 누어있으면 병석에서의 엄마모습.

미소짓던 얼굴에 차차 표정이 사라지시 시작했고 눈으로만 대화하던 생각에 가슴이 뛴다.

큰 고모얘기는 엄마가 병원에 있었으면 내 마음이 이렇지는 않았을거란다.
그럴지도 모르지...
아픈동안 많이 사랑했다.

**정약용의 하피첩**


 

"霞帔帖(하피첩)"은'
노을빛 치마로
만든  소책자'이다.
2005년에 수원의
어느 모텔 주인이 파지를
마당에 내다 놓았는데,
폐품을 모으는
할머니가 지나가다가
파지를 달라고 했다.
모텔 주인은
할머니 수레에 있던
이상한 책에 눈이 갔고,
그는 책과
파지를 맞바꿨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고
KBS'진품명품'에
내놓았다.
김영복 감정위원은
그 책을 보는 순간
덜덜 떨렸다.고 했다.
"진품명품" 현장에서
감정가 1억원을 매겼고,
떠돌던
이 보물은  2015년에
서울 옥션 경매에서
7억 5,000만 원에
국립민속박물관에 팔렸다.
'霞帔'(하피)는
옛날 禮服(예복)의 하나다.
'붉은  노을빛 치마'를
말한다.
茶山은 천주교를 믿었던 죄로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갔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에 남았던
아내 홍 씨는 남편 귀양 10년째 되는 해,
시집 올 때 입었던
치마를 그리운 마음을 담아 남편에게 보냈다.
그  치마에 茶山이
두 아들에게 주는 당부의
말을 쓰고
책자로 만든 것이 하피첩이다.
茶山은 치마의
한 조각을 남겨'매화'와
'새'를 그려서
족자를 만들어서
시집을 가는 딸에게
주었다.
이것이 '梅鳥圖'(매조도)이다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한 평생을 써도
닳지 않을 것이다.'라고
어머니의 치마에
사랑을 담아 쓴 글씨,
세상에서 이보다 더 값진 보물이 있을까?
茶山 부부의 애절했던
사랑을 담고서
세상을 떠돌아 다니던 하피첩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자리를 잡았다.
정약용의 위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아내의 노을빛 치마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200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도 우리들 가슴을 잔잔히  적신다.

2018년 1월 7일 일요일

1.이런저런생각 7/9-11/8.2017


7/9
"어떻게 사냐구?"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는거네!"
-어느 드라마에서-

가는 세월 잡을길 없어 그냥 쳐다만 보고있다네.
하루이틀,한주두주,한달두달,
어느덧 뉴욕에 온지 일년이 지났다.
앞으론 일년이년,십년이십년, 그렇게 세월은 또 흘러 가겠지?
나 없이도.

-철수 장마소식듣고-
장대같은 비를 맞으며 학교에 가던 생각이 난다. 도랭이 쓰고.
추억은 모두 아름다운건가 보다...

7/11
세상을 헤프게 살지도 않은거 같은데 신세가 너덜너덜 하다.

7/15
같이 걷는 노부부는 보기가 좋다.
휠체어타고 미는 노부부도 보기좋다.
왜 전에는 몰랐는지!

‘드디어 헤어지게 되는 구나.’라고 한탄하기보다...
‘몇 십 년 동안 즐겁게 지내주어 고마웠어’
라고 감사해 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곧 내 차례가 올것이니까...

노년의 건조한 생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여행은 많이할수록 좋다.
외국에서 여행을 하다 죽더라도, 자필의 화장 승낙서를 휴대하고 다니면, 어느 나라에서이건 화장하여 유골로 만들어 주고..
항공회사가 저렴한 가격으로 고국으로 운송해 준다. 여행지에서 죽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

8/11ㅡ현신에게ㅡ
속상하다.
너희들한테 무시당하는 느낌이들때 그렇다.
나이들면 다들 그러려니 생각들지만 그래도 속상한거야 어쩧겠니.
제일 심한게 수현이다.
나는 제돈 관리하는것 뿐인데 ...
피터황한테 증권계좌 옮기면서 설류작성이 필요한데 나는 읽어봐야 알지도 못하고 사인하라는곳에 사인해주고 끝냈는데 수현이는 읽어보고 사인하겠다기에 서류를 주었다.
읽고 이해했는지 하룻밤 지나고 가져와서 이메일첨부로 보냈다.
서류에 사인 빠진게 있다해서 다시 사인하라 했드니 그곳은 뭐 세컨더리 어카운트 홀더라고 안해도 된다기에 내서류도 사인했다했드니 수진이한테 물어보고 한댄다.
부동산이 뭐 그런걸 알겠냐했드니 클라이어트는 같댄다.
나는 뭘 모르니 하라는대로 사인했는데 몰라서 그럴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희들이 그렇면 서운한건 어쩔수없다.

8/8
더위는 다 지난거같아서, 이제 큰더위는 없겠다고, 엄마에게 뉴욕 날씨 좋다고,서울은 덥다고, 당신이 좋아하는 뉴욕이 참 좋다고 했드니 엄마대답이 여러마디 하신다.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입을 열고 말 할려고 애쓰셨다.
그만한 엄마의 반응에 애들 모두 반가워한다.

입추가 지나고 가을이랜다.
하는일 없으면 시간이 지루하게 간다는데 세월이 빨리 간다.

아침 여섯시경 일어나 엄마 기저귀 살피고 식전 산책, 아침먹고,엄마 병원침대로 옮기고 엄마 아침식사하고,애들오면 카페나가서 커피한잔하고, 그렇면 열두시 점심시간, 점심후 한시반에 공원산책, 세시쯤 들어온다.

네시에 간병인오고 여섯시 저녁먹고, 일곱시에 간병인 가고, 여덟시반에 엄마 약먹고 아홉시 엄마 내 침대로 옮겨서 잔다. 나도 샤워하고 잔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아주 쉽게 지나간다

8/12
포트리와서 살자. 이럴때 어울려 다니며 세상 잡념 다잊개(세영)
/ 좋지.
지금은 아무생각없이 살고있어.

8/17
내고향 싱연에도 가을이 찾아오겠다.
벼논에는 메뚜기가 뛰놀고 나무에서는 매미들이 울어대겠지.
조금 더 있으면 고추잠자리 날고
하늘은 더 높아지고...
채전에 애호박이 탐스럽겠다.
어머니가 밀어서 만든 칼국수에 애호박좀 썰어넣고 열무김치 얹어 먹으면 맛있었지.
코스모스핀 싱연 신작로길을 여유롭게 걸어보고싶다.

9/1
세상이 다 고맙구 눈물속에 보인다.
친구한테서 Wife 안부전화가 오면 목소리가 변하고 눈물이 왜 그리 나는지...
Wife 한테 잘못한게 너무 많다.
어제는 눈를 마주보고 있는데 무슨생각을 하는지 숨소리가 높아진다. 한숨을 푹 쉰다 옛날을 회상하는거 같았다.
뽀뽀하자고 입을 내미니 자기도 내밀며 응한다.전에 없던일.

9/2
가을이 와서 그런지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고 우울해진다.

9/10
몸에 힘이 쑥 빠지는듯하다.
지치는건 아닌지 그런느낌이다.
Wife얼굴이 평화롭고 예뻐보인다. 신혼때 보다도 더 예쁘다.

10/17-추노
우리같은 무지랭이 인생이야 칼날에서 춤추는 인생이지!...

10/24
내 삶의 한 Chapter 바뀌는 순간이다

10/26
산 사람은 산다고 한다.
죽은사람만 불상하다.
엄마한테 좋은일 못했다.
남은여생 좋은일하며 살아야겠다.

11/07
최병주와 아침통화했다.
부인이 5년동안 아팠는데 일상생활 하면서 지냈다고.
집안정돈을 하고나니 더 허전하다 미안하다.

김의영
일어나셨군요.  부인께서 떠나셨을때 얼마나 힘드셨나요.  제가 몹시 힘드는군요. 모두가 잘못해준 후회뿐입니다. 방이나 거실이나 산책을하나 어딜가나 옛날생각이 떠오르며 어렵게 합니다. 김회장 요즘은 좀 잊어지셨나요?

당신 보시라고 사다달은 TV가 이제 나를위한 물건이 되었소.

Mcdonald에 커피마시러 나갔다가 뒤가 마려워 집에들어오는길에 프리덤길에 왔을무렵 그냥 나와버렸소. 팬티를 대충닦아 빨래통에 넣어 당신한테 맡겼었는데 그렇지못하고 잘 빨아 넣었소.

11/08
창밖을 우드커니 쳐다본다- 깃발이 날린다-허드슨강에 배가 지나간다-눈물이 고인다-아무 이유없이 그냥 그런거다

Wife 9/20-11/3.2017

엄마

9/20 19:20
열이 99.5° 숨이좀 가빠지고, 산소호흡기 연결했다.
컨디션이 나빠지는듯 하다.
9/21 1:30
화장실에 앉아서 들릴정도로 엄나 숨소리가 크다.
열은 없다.산소부족인가?
아침부터 산소통 달았다.
숨소리가 작고 훨씬 편안한모습.
9/22
미간의 주름이 펴지고 편해보인다.
오늘은 정신이 맑다.
오른손을 들어 내 얼굴을 만진다.

9/23  5:00pm
편안한 얼굴인데 기운빠진 표정이다.눈도 반쯤은 감고.자는듯.
자는얼굴에 내얼굴을 맞대면 눈을 살작 뜬다. 숨소리는 들리지 않을정도로 작다.
숨쉬는 간격도 길다.가쁘지않다.
옆에있는 내마음도 편안하다.
힘은 없어보인다.옆에서 보면 계속 자는걸로 보인다.

토요일 저녁이면 내일은 혀신이가 온다는 기대를 한다.
모두 열심이지만 현신이의 정성스런 간호가 완벽하다.
옆에 서 있으면 똑바로 쳐다본다.
이마 주름도없고 편안하다.

팔과 다리 살갗이 얇아져서 피맺히는 현상도 좋아졌다.
그동안 산소부족으로 생겨난거같다.
저녀때면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올랐는데 없어졌다.
가래 끓는것도 좋아졌다.
9/25
밤새 오줌한번안누고 6:30 기저귀갈았다.
어젯밤 열이나서 그런건지?
전 같으면 눈뜰 시간인데 그냥 잔다. 옆으로 누이고 산책나왔다.
산책나올때 쳐다봐서 나오기 힘들었는데...
9/26
점심식사후로 가래가 나와서 힘들었는데 세시반경 몰핀투여후 가라앉았다.
여섯시 저녁식사를 힘들게하고 8:30  약시간에 잠이 안깨어 큰침대로 옮긴후 겨우 약드셨다.
눈은 안보이는듯한데 어느때는 보이는듯하고 눈은 촛점이 있다 없다 하는거같다.
언제 세상을 뜰지 예측이 어렵다.
9/28
성희가왔다.약력 엄마 생일이다.
자다가 숨소리가 작아서 얼굴에 귀를대야 들을수있다.
산소공급을 미리했어야 했다
10/1 5:30pm
두눈 똑바로뜨고 날 바라본다.
계속 바라본다. 날 어렵게 한다.
숨 쉬는거,눈 떴다 감았다하는거 오른손 꽉 잡은거 그게 전부다.

10/8
아침에 눈을뜬다.전에는 또렷한 큰 눈이었는데 반쯤 감은 힘없는 눈. 조금후에 감았다 다시뜬다.
10/14 오후 3:00
신음소리내며 입으로호흡.
몰핀 투여- 4:30 가라앉음.
밤에는 잠 잘자셨다.
저녁밥은 조금 먹고 잤다
10/19
가는길이 고통없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3,4일 전부터 밤에 오줌이 없더니 어제는 간호사가와서 빼냈다.
신장에 문제가 있단다.손발 팔뚝 다리가 부었다. 오늘아침은 얼굴도 부었다.
10/21
포트리에서 점심먹고왔다.
엄마가 식사중에 기도로들어가 힘들었단다.
지쳐서 맥을 못춘다. 이렇다가 그냥 가는거구나 하는 생각이든다. 지금같으면 일주일 버티기 힘들듯하다. 저녁식사 프로틴3 죽1스픈.
10/22. 9:30am
침대에 뉘어놓고 아침산책 혼자나와 걸으면서 생각한다.
며칠이나 더 살수있을까?
이렇게 보내고나면 난 어떻게 살게되나.
아침에는 늘 일찍눈을 떴는데  그냥 자기만한다.
고개를 떨구고 누어있는 얼굴을 쳐다보며 저렇게 간다는 생각을하면 기가 막힌다

10/23
아침 산책나갈때 눈을 안뜨고 자기만한다.
힘들게 아침식사 세스픈 약 드셨다.
수진이와 중앙장의사 다녀왔다.
점심은 깊은 잠에들어 못했단다.
간병인온후 네시반쯤 저녁식사 6스픈하고 약 드셨다.
밤약은 잠이안깨서 못했다.

10/24
병원 침대로 옮기고 물도 못먹고 잠만잔다
점심도 약도 못먹었다.
오후2시 박찬섭 목사와서 (임종)예배드렸다.

10/25
이달도 일주일 남았다.
남은 시월의 일주일을 견딜수있을는지.
입에적신 물도 못넘기고 있다.
어제는 임종예배도 드렸고 더 해줄수 있는것도 없다.
불상하고 안타갑고 마음이 시렸는데 지금은 오히려 담담하다.
목사님 말씀대로 하늘나라에 영접받으며 편안히 가신다니...
얼마후 나도 뒤따라가게 되는것이니.

오후3시 간호사와서 오늘 못넘길수도 있다고.
4시 가병인 오는거 취소했다.
애들 밤에 대기해야겠다.

80이면 아직 좋은시간 좀더 남았는데-우리 둘만의시간 말이요.
이렇게 떠나면 아깝지 않소?
그냥 버리는 시간이 되지 않나요.

10/26
낮에 성희오고 밤에 진배왔다.
1985년 수진이 유학떠난후 32년만에 딸넷과 한집에모여 처음 으로 같이잔다.
옛날 얘깃거리가 참 많은데 같이모여 이야기한다. 엄나와 같이해야할 이야기들.
현신이가 좋았든 기억이 뭐냐고 묻는데 생각이 안난다.
잘못한 일들만 너무많다. 다시 산다면 다 이해하고 잘해줄것같다.
떠나는 사람이 정을 떼고 간다는데 당신은 정을 듬뿍 안겨주고 가는구려.

10/27
박서방이 한국에서 왔다. 12시에 의사가 왔다

10/28(토)
아침 4:18 운명.
팔다리는 차고 몸은 104°까지오르락내리락 몰핀으로 밤을지새고 끝에는 붕어가 뻐끔거리듯 숨을 몰아쉬다가 운명했다.
팔 다리는 차가웠고 가슴과 등 온몸이 뜨거워졌다.
천천히 숨을 몰아쉬다가 가셨다.
얼굴은 창백해졌고 손톱은 보라색으로 변했다.

6시 장의사가와서 운구해갔다.
마치 쓰던물건 버리듯 써비스엘리베이터로 실어갔다.
동준이 철수 동선 동진 송정희에게 연락했다.

7시 남은가족 7명 76가 Maison Kayser 에서 아침식사했다.
진희랑 8식구 소람에서 점심먹고  
꽃집에서 조화주문하고 수현이 생이케이크 사가지고 왔다.

10/29(일)
아침에 일어나니 옆에 엄마가 없다.
눈도 못뜨고 누어있던 엄마가 없다.

살고싶어 했는데. 살려고 애 썼는데. 살수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내가 살려줄거라고 믿었었는데.

물도 씹어먹으며 쓴 약도 열심히 먹고 무엇이나 열심히 먹었는데.
불쌍해 어찌하나.
나하고 사느라 고생 많았지.

수진이 성희하고 초대교회에서 예배보고 커피한잔,베글한조각으로 아침식사하고 집에왔다.

침대위에 양반다리하고 앉아 불교음악 무상계를 듣고있다.
한네의 이별도 좋다.

엄마모습을 그리다가 나도모르게 한숨이 푹 나온다.
엄마가 그랬었지-병원침대에 표정없이 누어 가끔 한숨를 푹 하고쉬었었지.

식탁에서 점심먹고 안방으로 들어오는데 침대에 엄마가 안보인다. 걸음이 멈칫한다.

오후 7시 입관예배.
한복입고 예쁘게 얼굴화장한 엄나가 관속에 누어있다.
조문객이 적을거로 생각했는데 80여명, 엄마가 외롭지 않았다.
성가대합창, 박형은 주임목사 집례, 성희 조사, 많은 조객들,엄마가 기뻐하셨다.
풍림에서 저녁식사-50여명 참석

10/30(월)
9:30  박찬섭목사 발인예배.

CEDAR  LAWN
Cemitery & Cremation

오후6시-8식구 저녁식사
(Hatsuhana  48가 5th ~Madison)

10/31(화)
Kensico Cemitery.
RedHat 점심
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 답사

11/2/2017
KENSICO- $4,000
Lot # - CGO-Lot 14-2 Units

OnonDAGA
Cremation Garden

11/3
Petite soo chow 점심
중앙장의사에서 Ash 모셔왔다.

5Wife 4/11-4/21.2017


4/11
결혼 52주년 날이다.
사는동안 왜그리 잘해주지 못했는지....
오늘은 기력이 더 없어보인다.
수진이 풍선사오고 현신이 케이크 사오고 다이어 반지 끼어주고 52 주년 Ceremony 했다.
뭘 아는지 가련하기만 하다.
엄마하고의 대화. 오후 4:25
"이쪽 나 쳐다봐"
"이제 뭐할거지?"
"뭐할가?"
"이제 자는거지"
4/13
편안한 얼굴로 잠잔다.
하루하루 기운이 없어보인다.
4/15
헤어질날이 자꾸 가까워지는거같다.
얼굴은 평온하고 곱다.
눈은 크게안뜨고 반쯤뜨고 가끔 쳐다본다.
TV 를 보는거같지만 아니다.
아무거나 잘 먹는다.그 힘으로 산다.
엄마가 다 아는거같다.
왼쪽 눈에 눔물이 맺힌듯 하다.
눈을 위로떠 날 한참 쳐다본다.
4/16
초여름에 가까운 따스한 봄날 오랫만에 Central Park 에 왔다.
모두들 무리지어 다닌다.
혼자는 산책도 아무런 의미가없다.
4/17
Wife 가 아프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다.
쳐다보고 있어도 길거릴 걸어도 혼이 나간 상태다.
며칠전부터 잠을 너무많이 잔다.
아침에 기저귀갈려고 다리를 움직이면 아야야 하고 아파한다.
4/18
살기가 힘든다.
생각없이 살아왔는데 잘못 살았다는 후회가 많다.
엄마가 정신이 좀 맑다. 드라마 세편 보셨다.
오늘은 나한테 관심이 많다.
자꾸 날 쳐다보고 움직이는대로 쳐다보고 실 눈으로 TV 보다가  눈을 크게뜨고 치켜본다. 
엄마 얼굴을 보고있으면 자주 치켜본다

4/21
목숨이 붙어있을 뿐 삶은 아니다.
불쌍하기 한이없다.
내가 할수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딱하기만 하다.
얼굴을 쳐다보기가 힘든다.
숨소리는 정상인데 눈을 얇게 뜨면서도 자는 숨소리.
안 자네? 자는거여? 
엄마 "자~" 하고 대답한다.

당신생각.11/23-12/31.2017


당신생각

11/23
아침에 일어나 엄마 얼굴을 본다. 
잘 잤는지 기분은 어떤지. 
어느땐 눈물이 주루룩 흘러있다. 
어떤 마음이었길래 눈물을 흘렸을까. 
지금 나도 눈물이 자꾸 흐른다. 
지금 내마음과는 다른 눈물이었겠지.
살고 싶어 했는데.

11/23
아픈사람 보면 불쌍하다.
길거리를 가다가도.
건강해야 한다. 죽으면 끝이다.

엄마 눈물이 흘러 귀밑까지 내렸다. 눈에 눈물이 고여도 많은 눈물인데 귀밑까지 흐른눈물은 아주 많은 눈물이 난거지...

11/25
당신 자리는 그 누구로도 세상 무엇으로도 대신할수 없겠습니다-

12/2
어제 현신이 따라 Texas 에 왔어요.
San Antonio 에내려 Austin 근처 Camp Lucy 에서 하루 묵고 오늘은 Dallas 근처 Omni Hotel에 들렀어요.
어제 오늘 바베큐 점심먹었는데 당신생각 했어요.
아침산책 하면서, 차타고 이동하면서 생각 많이 했어요.
나 혼자 여행다닌적이 없었으니 말이요.
잠 자리에 들면 더해요.
아파서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가끔 한숨쉬던 생각하면 견디기 어려워요.
미안하오. 나혼자 여행이나 다니고.

12/3  Dallas
따라다니는 여행이지만 나혼자가 아닌 엄마와 같이 따라다니면  좋았지.
엄마한테 잘해줄걸 하는 생각이 더 난다.

12/5  Marfa
혼자 잠시 누어있다.
어제는 8시간쯤 차를 탔다
중간에 사막속에 있는 공원의 Picnic area 에서 가지고온 밥에다  통조림김치 김 꽁치 남은 스텍키로 맛있는 점심먹고.
고단했는지 입술이 부르튼다.
시큰둥하게 살아온거같 은데도  아무말 안하고 있어도 옆에 엄마가 있어야 내마음이 편한가보다.
엄마도 내가 있어야 든든하고 의지가 되었겠지.
차를 탈때도 엄마가 늘 옆에있었는데.

12/7
Becker Vineyards 에서 현신이 선물산다.
나하고 다닐때 선물사는거 싫어했지...

12/9   
    내 왜 미리 몰랐던가?
-지나고 나서 깨달으면 이미 늦는것을-

자주 Central City에나가 아침을 먹었지. 
커피도 마시고 점심도 가끔 했지. 가게도 들러보고 지하상가도 걸었었지.
아침에는 구반포까지 걸어서 커피도마시고 쉬었다가 돌아왔지.지난해 3월달에 갔을때 개천뚝 산책길을 걸었지. 
당신이 잘 따라오지 못하고 자꾸 처졌었지.
그때 내가 알아 차렸어야 했는데 미안하오.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누었지. 
그건 전에 안하든 일이었는데.
뉴욕에 돌아오기 몇일전에야 당신몸에 이상이 있다는 짐작을 했소.

같이 지내는동안 내 기준으로만 살았소. 
지금 다시 산다면 당신을 다 이해하겠소.
모두가 사랑이었다는 생각을 하오.

같이 걸으면서 손잡고 갈거요.
잘때도 소잡고 자고.
걸음도 당신에 마추어 걷겠소.
식당 선택도 당신이 하라 하곘소.
현관을 나가면서 당신을 앞세우겠소.

12/9
당신과 같이 살때가 그립습니다.
뭘 먹든, 어딜 가든, 뭘 보든, 그리움 뿐입니다.
오늘은 말을 탔습니다.
날 위로한다고 여행에 데려왔지만 내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하는거 같습니다. 오히려 옛날 당신과 여행하던 추억들을 들추는구려.
여기오니 당신과 아리조나추억- 골프치던일 밥해먹던일 떠오릅니다.

12/10
현신이 따라 여행한지 열흘 마지막 날이다.
아무 탈 나지않고 마무리 잘돼간다.
처음 사흘은 바베큐 맛잇게 먹고 소화 잘 시킨것이 기억에 남고 먼길을 달리다가 사막 피크닉에어리어에서 쌓온밥 맛있게 먹은것.
다음은 목장체험 기억에 남을일들이다.
어딜가나 식사가 좋았고 속이 좋아져서 여행맛이 아주좋았다.
오늘 샌앤토니오 리버워크,알라모요새 보면 이번여행 끝이다.

여행하면 엄마 잊을거라는 생각은 틀린거 같다.
차를 타도 잠자리 들어도 뭘 먹어도 엄마생각에 눈시울이 젖고, 그립고, 병석에서의 엄마모습이 떠올라 미안하고 힘들다.
오늘 지나면 여행 잘 마치고 내일 12/11 뉴욕 집에 간다.

12/13
여행에서 돌아왔어요.
내 마음속에 자리한 당신이 이렇게 큰줄을 몰랐어요.
온통 당신모습 당신생각뿐이요.

12/12
나는 혼자다. 아무도 없다.
헛 살았다. 잘못 살았다.늦었다.
밖엔 바람이 세다.
창문에 부딪치는 바람소리..
심란하다.
내가 90 까지는 살래나?
전에 생각하길 80까지 살면 살만큼 사는거라 생각했는데 80이 넘으니 더 살수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네.
아직 친구들도 웬만큼 남아있고.
80넘기면 잘 안죽나보다.

12/17
수진이가 초대교회 못가서 혼다 타임스퀘어 교회 가고있어요. 
천천히 걷고 있어요. 
당신 걸음에 마추어서.
지난해 3월 서울에 가기전 당신과 여기온것이 마지막이었소.
혼자 지내는것이 이렇게 힘드는것이군요. 당신이 없으니 세상이 비었습니다. 모든 기억이 생생하세 떠오르오.전에 생각 안하든 사소한거까지.
혼자 사는 사람들 어떻게 살아 가는지? 
나 혼자 사는게 미안하오/사는거 같지도 않지만.
늙어서 마지막엔 부부밖에 없다는데-

애들도 친구도 우리 같이 있을때 말하는 것이요.

12/19
방 커튼을 내리며 당신이 떠올랐소. 나는 커튼을 활짝 열고싶어 했지.
침대에 앉아 양말신으며 이자리가 당신누었던 자리임을 느꼈소.
화장실로 날 보려고 들어오다가 당신 엎어진 자리를 물끄럼이 바라봤소.
당신 옷장하나를 내가 쓰고 있소.
장문 열때마다 당신생각하오.
침대 머리맡에 당신사진보면 울컥해 집니다.
당신 퇴원하면서 사온 벽걸이 TV, 음악듣는데 잘 쓰고있어요.
TV보면서 당신생각 합니다.

지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소.
그때도 날씨가 희멀거니 우중충했지요.당신은 뭘 아는지 TV쪽만 바라봤지요. 이런 날씨가 싫어요.

15개월을 어떻게 견뎠나요.
살수있다는 믿음은 있었나요?
내나 애들이나 그날 그날 당신 보살피는것 외에 무엇하나 할수있는게 없었어요. 
당신도 그런것을 알고 있었나요.
알고 있었겠지! 그래서 눈물도 흘렸겠지. 한숨도 쉬었겠지.
미안하고 죄송해요. 
나 어떻게 해요.눈물이 납니다.

4시가 되었네요. 수진,현신이는 집에가고 클라라가 오지요. 운동 목욕을 시작하면서 저녁 돌보기가 시작됩니다.
6시 약, 저녁식사, 8:30약, 9:00 취침에들어가는 하루 마감입니다.
기가 막히고 눈물납니다.
살아난다는 기약이없는 시간들 이었지요.
오늘은 왜 내마음이 이런지요.

12/21
떠난후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픈동안에도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도 느꼈을겁이다
전에는 미처 천사처럼 착한 당신을 몰라봤습니다.
아픈동안 당신은 천사였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 후회되고 원통하고 슬픕니다.
이런 멍청한일이 어디 또 있나요.
불쌍해서 내가 견디기 힘듭니다.

12/29
수술하고 15개월여만에 당신은 가셨습니다.
그 기간은 투병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생의 마지막날을 기다리는 어처구니없는 기간이었지요.
하지만 나에게 많은 느낌을 남겼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부부란 무엇인지. 가족이란 무엇인지.
명예를 쌓고 부를 축적하고 나라를 위하고 거창하게 인류에 공헌하고등

12/31
당신이 떠난 금년겨울은 몹시도 춥습니다.
밤 낮으로 영하의 추운날씨가 계속되고 있읍니다.
마음이 더 우울하고 춥고 쓸쓸합니다.
오늘같은날 당신이 떠준 털모자가 아주 좋습니다.
그땐 고맙다는 말도 안한거같군요 . 고맙습니다.
이 모자가 좋은걸 너무 추우니까 알겠습니다.
당신없이 혼자 방안에 있으니 자꾸 창밖 허드슨강만 쳐다봅니다.
근래에 강이 얼지안았는데 올해엔 어름덩어리들이 떠내려올듯 합니다.
당신의 소중함을 이제서 알게되니 난 바보중의 바보인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