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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5일 목요일

우리 몸의 신비

우리 몸의 신비

• 피가 몸을 완전히 한 바퀴 도는 데에는 46초가 걸린다.

• 혀에 침이 묻어 있지 않으면 맛을 알 수 없고 코에 물기가 없으면 냄새를 맡을 수 없다.

• 갓난아기는 305개의 뼈를 갖고 태어나는데 커 가면서 여러 개가 합쳐져서 206개 정도로 줄어든다.

• 두개의 콧구멍은 3~4시간마다 그 활동을 교대한다. 한쪽 콧구멍이 냄새를 맡는 동안 다른 하나는 쉰다.

• 뇌는 몸무게의 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뇌가 사용하는 산소의 양은 전체 사용량의 20%이다. 뇌는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의 20%를 소모하고 전체 피의 15%를 사용한다.

• 피부는 끊임없이 벗겨지고, 4주마다 완전히 새 피부로 바뀐다. 우리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이 천연의 완전 방수의 가죽옷을 한 달에 한 번씩 갈아입는 것이 된다. 한사람이 평생 동안 벗어버리는 피부의 무게는 48kg정도로 1,000번 정도를 새로 갈아입는다.

• 우리의 키는 저녁때보다 아침때의 키가 0.8cm 정도 크다. 낮 동안 우리가 서 있거나 앉아있을 때 척추에 있는 물렁한 디스크 뼈가 몸무게로 인해 납작해지기 때문이다. 밤에는 다시 늘어난다.

• 우리의 발은 저녁때 가장 커진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 보면 모르는 새 발이 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발을 사려면 저녁때 사는 것이 좋다.

• 인간의 혈관을 한 줄로 이으면 112,000km로서 지구를 두 번 반이나 감을 수 있다.

• 인간의 뇌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가끔 머리가 아픈 것은 뇌를 싸고 있는 근육에서 오는 것이다.

• 남자의 몸은 60%가, 여자의 몸은 54%가 물로 되었기 때문에 대개 여자가 남자보다 술에 빨리 취한다.

• 아이들은 깨어 있을 때보다 잘 때 더 많이 자란다.

• 지문이 같을 가능성은 64.000.000.000 대 1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의 지문은 모두 다르다.

• 한 단어를 말하는데 650개의 근육 중 72개가 움직여야 한다.

• 남자는 모든 것의 무게가 여자보다 많이 나가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는데 여자가 지방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이것이 여자를 아름답게 만든다.

2016년 8월 17일 수요일

일본 대학생들의 박정희 觀

- 장진성 칼럼 2016.07.17 -

일본 대학생들의 박정희 觀


그들은 박정희의 가장 큰 장점을
청렴함이라고 했다.
日학생들 "박정희를 부정하면
마치 민주화 세대인 것처럼 자부하는
그들을 보니 아직도 민주주의를
모르는 나라"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어제 밤 일본 대학생들과 장시간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물론 내가 아니라 한국말을 잘하는
그들 때문에 우리는 서로 교감할수
있었다.
국제외교정치를 전공하는 그들은
연세대와 고려대 유학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이 해안포를 발사하면
그 소리가 한국에서 보다 더 크게 들리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만큼 안정된 질서와 기나긴 평화에
체질화된 일본인들이어선지
분단 상황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이웃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컸다.

나는 한국역사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놀랍게도 일제히 박정희!
라고 합창했다.

한국 대학생들에게서도
잘 듣지 못한말을 일본 대학생들에게
듣는 순간 전율 같은
감동이 솟구쳤다.

아니 그들은 나보다도 박정희 대통령을
더 존경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우선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을
청렴 함이라고
했다.

미리 준비하고
서거한 것도
아닌데,
총에 맞아 급사
했는데도 자기와
가족을 위한
비자금이

전혀 발견되지 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에
일본이 3억 달러를 원조했을 때도
필리핀이나 다른 나라 대통령들
같은 경우 그 돈을 횡령해 혼자만
부자가 된 반면,

박대통령은 고스란히 국민을 위한 경제
개발에 돌렸다는 것이다.

나는 어설픈 상식으로 김일성은
세습권력을 위한 독재를 했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위한
독재를 했다며 분단시대의
두長期(장기) 체제를 비교했다.

그러자 우리나라에선 개발독재라는
표현도 일본 대학생들은
개발독선(獨善)이라고 했다.

박대통령이 비록 밀어붙였지만
결국은 옳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그때 고속도로를 반대했던
이른바 민주투사들이란 사람들이
과연 역사 앞에 진실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전기를 아끼느라
청와대 에어컨을 끄고
파리채를 들었던 사실이며
서거 당시 착용했던
낡은 벨트와 구두
화장실 변기에 사용했던 벽돌까지
그들은 박대통령 일화를 참으로
많이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 들었는가 물었더니
박대통령을
연구하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조갑제닷컴'에서 출판한
박정희 전기를
모두 읽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우리 한국 대학생들 중
13권에 이르는 그 방대한
전기를 끝까지 읽은 학생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하고 속으로
생각해 보 았다.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 덕에 살면서도
그 위업을 경시하는 한국의 현대사를
편향된 일방적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솔직한 역사 인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국은 민주화의 역사만을
정당화 한다고 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정작 한강에는 그 상징물이
없는 나라이다.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그자리에
세우는 것이
바로 역사 정립이고 후대의
예의가 아니겠냐며
한국은 일본의 과거를
자꾸 문제 삼는데 우선 저들의
현재부터 바로 세우라고
비판했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 같은 인물이
먼 옛날이 아니라 우리 부모
세대에 일본을 구원했다면
자기들은 우리의 가까운 역사로
자부심을 가지겠지만
한국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다며
매우 이상해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을 당시 한국
대학생들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논쟁했던 이야기를 했다.

한국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자일 뿐이고
왜 독재를 하게 됐는지,

그 결과가 과연 비참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도,
분석하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치 그들의 주장은
논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고의 형식과 틀에 의존한 교과서
같았다.

박정희를 부정하면
마치 민주화 세대인 것처럼
자부하는 그들을 보니
아직도 민주주의를 모르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웃음으로 비판했다.
이념이나 국민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를 떠나 시위자들의 사회적응
심리부터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일본은 어디 가나
스미마셍으로 통한다.
남에게 불편을 줄 때는 물론
부를 때도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있다.

그래서 미안하지 않기 위해 거리에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공동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하며 자기집 앞은
깨끗이 청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잦은 시위들을 보면
남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라도 자기들의
뜻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잘못된
국민정서의 결정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용인되는 사회아니 법치에
도전해도 된다는 시민 의식이 바로
한국의 대표적인
후진성이라고 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일본의
한류열풍에 대한 이야기로 즐겁게
술잔을 나누었다.

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할 줄 아는
일본 대학생들을 위해
오늘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더치페이가 민주주의 라며 각자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무엇으로든 표현하고 싶어
2차 노래방 값은
그들 몰래 내가 계산했다.

2016년 8월 16일 화요일

아버지의 지게

   🍒 아버지의 지게

지게 작대기로 사셨던 아버지 
가끔은 그 메마른 모습에 기가 질려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리라
봄버들처럼 나긋나긋 살리라 했었다

이제 아버지는 별 하나로 떠 있고
나는 아버지를 닮은 아들을 키운다

아들은 종종 아버지에게 보였던
어린 시절 내 눈빛을 보이곤 하는데
그럴 때면 곤두박질치는 유성처럼
아찔하게 스러지는 아픔을 안는다

나 역시 작대기로 굳어버린 것일까
한평생을 빛난 적이 없었던 분
그러니 하늘 저 뒤편에 계시겠지
아버지가 그랬듯 나도 보름달
저 탈출구를 지나 그 세상에 가면
허탈한 표정이라도 반겨 주실까

뒷동산 할미꽃처럼 고개를 떨구다
바라보는 달은 차갑기만 한데
한 짐 단단하게 짊어진 아버지가
얼음 달을 조각내고 걸어 나온다

썩은 나무 고자배기가 아닌
일렁이는 파도의 버들 짐을 지고서

언제였던가, 슬그머니
도망쳐 버린 봄버들, 아버지에게
붙들려온 녀석이 파란 몸부림이다.

2016년 8월 15일 월요일

꼭 나였으면 좋겠소

       꼭 나였으면 좋겠소

생각만 해도 명치 끝이아파와서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그리운 사람이 꼭 나였으면 좋겠소

길을 걷다가 닮은 목소리에 문득 뒤돌아섰을 때 그곳에 있는 이가 너였으면 하는 사람이 꼭 나였으면 좋겠소

외로울 때 가끔 생각나는 사람보다는 펄펄 끓어 오른 고열로 혼수상태 속에서 부르는 이름이 꼭 나였으면 좋겠소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된 어느 날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그 사람이 꼭 나였으면 좋겠소

삶의 종착역에서 이별의 눈인사를 나누고 싶은 사람보다는 한잔 넘치게 술 따라주며 "당신 때문에 참 행복했어!" 라고 말해 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꼭 나였으면 좋겠소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 가슴 먹먹하게 그리운 사람보다는 만날 수 없어 서러운 사랑보다는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정다운 어깨동무이었으면 좋겠소

- 제경스님 시집 中 -

2016년 8월 11일 목요일

건강비법

◈94세 박승복 회장의 체험담◈

박승복씨는 샘표식품 회장이다.
올해 94의 박승복회장은 피부가 50대 정도로 깨끗하고
평소에 피곤을 전혀 모르고 약 30여년간 병원에 간 일도 없고,
약을 먹어본 적도 없는 건강체질

지금도 주량이 소주2병 + 위스키한병 + 고량주 한병 이다.
올해 94세(1922년생) 박승복 회장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녹용이나 인삼 드세요? 무엇을 드셔서 그렇게
건강 하세요?” 라는 질문이다.

그의 답은 늘 같다."아무거나 잘 먹는다.운동도 전혀
안한다. 골프·등산은커녕 산책도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

그만큼 하루가 바쁘다. 중국 일본 등에서 온 30∼40대
바이어 들과 술로 대적해도 지지 않는다.
“노인이라고 얕봤다가 큰코 다쳐서 가지. 하하하….”
하고 웃는다.

병원에 가본 기억이 약 30년전 으로 건강에 자신이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다.
사업상 술자리가 많다보니 만성위염 위궤양에 시달렸다.

1980년 일본 출장때 함흥상업학교 동기였던 일본인 친구가
“식초를 먹으면 숙취가 사라지고 피로도 없다"고 알려줬다.

믿을 수 없어서 일본 서점에 가서 식초의 효능과 복용법에
대한 책들을 사서 읽어보고 "아하 바로 이거구나! " 했다.

귀국한 후 식초를 마시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다.
3일을 마셨더니 변비가 없어졌다.
나만 그런가 해서 주위사람들도 마시게 했더니 모두 같았다.

한 달을 꾸준히 마시니 피곤한 것을 모를 정도가 됐고,
석 달이 지나니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만성 위염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박회장이 말하는 식초 먹는법 :
1회에 식초 18cc(작은 소주잔으로 1/3 정도)에 냉수를
묽게 타서 식후에 하루 3번 마신다.
(54cc를 하루에세번 나누어 마신다)
공복에는 속이 쓰리고 소화에 지장이 있으니 식후에 복용.

냉수 대신 토마토주스를 타면 마시기가 쉽다.
식초는 사과식초가 좋으며, 너무 진한 식초는 피하고.
흑초는 식초성분이 35% 뿐임으로 양을 늘려 사용한다.

박회장은 사과식초,와 흑초를 즐겨 마신다.
박회장은 식초가 피부에도 좋고 흰머리카락도 방지해
준다고 했다.그는 염색을 하지 않았어도 앞머리만 약간 희다.

박회장의 기사가 알려진 후에 평소 알고 지내던 60∼70대
사람들을 만나면 대하는 태도가 싹 바뀌었다.

전에는 가벼운 목례만 했었는데 이젠 깍듯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서 94세 인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회장님 그렇게 나이가 많으셨어요? 제 또래로 알았습니다”
하고 놀란다.

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

.🏘 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

암중에서도 췌장암은 진단후 2년내에 대부분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인 암이다. 그런데 몇 달 전 이런 췌장암의 전이를 차단시키거나 발생을 지연시키는 일종의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이 언론의 의료계 뉴스란을 일제히 장식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이 연구업적의 주인공은 열충격단백 (Heat shock protein) 연구의 전문가인 미국의 로버트 마키 박사였다.

일반인들은 이런 보도를 접할 때 자극적인 제목이나 과장된 내용에 우선 관심을 보이지만 의료계 전문가들은 단순한 제목이나 내용보다는 어느 기관의 어떤 팀이 그 연구를 수행했고 그 결과가 어떤 학술지에 발표되었느냐를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과 의료 상업주의가 초래할 수 있는 대중오도의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바로 연구자, 발표학술지, 소속기관 등과 같은 일종의 "브랜드 네임"인 것이다.

로버트 마키 박사가 속한 기관은 미국 뉴욕의 슬론케터링 암센터였고 "슬론케터링"이란 이름만으로도 그는 암관련 전문가 집단에게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신뢰의 보증수표를 흔들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슬론케터링. 공식명칭은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로 약칭 MSKCC라고 불리는 이곳은 1894년에 설립된 세계 최고(最古)이면서 최대인 종합 암센터이다. 또한 미국 시사 주간지 지가 매년 시행하는 베스트 병원 평가에서 이 평가가 처음 이뤄진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암부문 최다 1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명실공히 최고(最高)의 암센터가 아닐 수 없다. 그 비싼 맨하탄의 세 블록을 몽땅 다 차지하고도 모자라 여기저기 별관을 늘여가고 있는 엄청난 시설규모, 정규직 간호사 1,200여명, 전공의를 제외한 암전문 의무직 스탭 600여명에 이르는 쟁쟁한 의료진을 보유하고 있는 슬론케터링이라는 거인을, 본고에서는 그 역사와 강점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슬론케터링의 역사

지금으로부터 110년전 가족이 암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었던 한 평범한 뉴요커가 암치료를 위한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기관의 설립을 갈망한다. 이 사람의 작은 기부에 의해 1894년 오늘날 세계최고의 암센터 슬론케터링의 전신인 메모리얼 병원이 뉴욕에 세워지게 되고 이 병원은 단기간에 일약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암연구와 치료의 본산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된 것은 상당부분 초창기 병원장이었던 전설적인 병리학자 제임스 유잉의 리더십에 덕분으로 그는 오늘날에는 상식이 되어버렸지만 최초로 의료진을 내과와 외과로 구분하여 운영하였고 인근의 뉴욕 암병원을 병합하여 슬론케터링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엑스레이가 렌트겐에 의해 발견된지 6년이 지난 1902년, 이 미국 최초의 암센터에서 처음으로 엑스레이가 암치료에 사용되게 된다. 또 윌리엄 콜리 박사가 세균백신을 이용하여 최초로 면역치료의 실험을 한 것도 1903년 이곳 메모리얼 병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1915년 제임스 유잉은 백만장자 광산기술자인 제임스 더글라스와 협력계약을 맺고 병원내에 라듐과(radium department)를 설치하는데 이곳은 이후 미국내 방사선치료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다. 1917년에는 전세계에 공급되는 라듐의 약 3분의 1이 유잉의 메모리얼 병원에서 소모되고 있었다.

20세기 초 미국내 최초의 방사선의학 연구실이 메모리얼 병원내에 설립되고 이때 연구원으로 그 유명한 마리 퀴리 박사가 1921년 영입되어 초창기 방사선 치료에 관한 각종 연구가 꽃을 피우게 된다.

1930년대 방사선 치료분야와 함께 암 수술분야, 특히 헤이즈 마틴이 이끌던 두경부암팀과 조지 팩이 이끌던 소화기 암팀이 단연 두각을 나타내어 그들이 개설한 외과계 교육 프로그램에 전국의 젊은 외과의들이 앞다투어 몰려들게 된다. 록펠러 가의 도움으로 땅을 기부받은 메모리얼 병원은 맨하탄 내 현재의 위치인 코넬의과대학 부근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것도 이 즈음의 일이다. 1939년에 맨하탄 68가에 세계 최초의 소아암 병동을 비롯, 모든 암에 대한 부서를 갖춘 12층짜리 새 병원이 지어지게 된다.

사업가였던 알프레드 슬론과 찰스 케터링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천만 달러의 거금을 암센터 건립을 위해 내어놓는다. 이 기부금은 곧 슬론케터링 연구소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1950년대 슬론케터링 연구소에서는 수많은 ꡐ세계 최초ꡑ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중에서도 최대업적으로 꼽히는 것은 당시 슬론케터링에서 이루어졌던 항암제의 선별 및 효능시험법으로서 이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3만여개의 약제와 7만여개의 복합제가 슬론케터링 연구소에서 개발한 방법에 의해 선별검사가 이뤄졌고 이 가운데 많은 것들이 오늘날 임상에서 흔히 쓰이는 항암제로 자리잡고 있다. 이 와중에 1954년 민 추 리(Min Chu Li) 박사에 의해 전이성 암이 항암제 치료에 의해 최초로 완치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오늘날 간기능의 대표적 표지자가 된 혈청 GOT, GPT의 개발도 역시 1950년대 슬론케터링 연구소의 작품이었다.

1960년대 슬론케터링 연구소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하였고 이때의 연구자들은 생쥐에서 백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무엇인지 밝혀냈으며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비강암 발생에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아내었다. 기초 연구자들과 임상의사들의 활발한 공동연구는 1960년대 말 소아 백혈병 치료에 유용한 L-Asparaginase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1968년 싸이클로트론 1호기가 도입되어 오늘날 암의 첨단영상진단법인 PET 테크놀로지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1973년 새 1인실, 2인실만으로 600병상을 갖추고 18개의 수술실이 돌아가는 새 메모리얼 병원이 문을 열었는데 이곳에서의 기념비적 사건은 바로 골수이식의 시작이었다.

1980년 폴 막스 박사가 새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마침내 메모리얼 병원과 슬론케터링 연구소는 합쳐져서 오늘날과 같은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로 개편된다. 이때 방사선 종양학과가 20개의 선형가속기를 갖춘 세계 최대규모로 완전히 확장되었고 이후 연건평 4만 평방 피트 규모의 유방암 센터와 30만 평방 피트의 록펠러 연구소가 건립되었다. 또한 건물 상층부에 호텔시설을 갖춘 10층짜리 외래 암진료 센터가 만들어졌고 외국 환자를 위한 국제센터와 비뇨기과 암 전문 센터가 각각 별도로 문을 열었다.

2000년 폴 막스 박사의 후임으로 6년간 미국립보건원(NIH) 원장을 지낸 헤롤드 바머스 박사가 영입되면서 슬론케터링 암센터는 분자생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그의 지도력 아래 임상진료와 암기초연구가 탄탄히 유기적 협조 체제를 이루면서 세계 최고 암센터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슬론케터링의 강점

슬론케터링 최대의 강점은 단연 보유하고 있는 인적자원의 우수성이다. 해마다 거액을 들여 우수 의료진, 연구진을 스카웃 해오기도 하고 교육훈련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인적자원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서는 이렇게 우수한 의료진, 연구진을 제외한 다른 측면의 강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1) 직원들의 명확한 사명의식

슬론케터링의 로고는 흡사 생선의 가시와 비슷하게 생겼다. 하늘을 향한 화살표를 아래쪽에서 세 개의 직선이 가로지르고 있는 형상인데 세 개의 가로 막대가 의미하는 것은 환자진료와, 연구, 그리고 교육이라고 하며 위로 향한 화살표는 의료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기본적인 방향성을 뜻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 진료와 연구 그리고 교육이라는 방법을 한데 모아 암정복의 그날까지 정진하겠다는 뜻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CI 작업이 좀 과다하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로고 못지 않게 슬론케터링에서 눈에 자주 띄는 것은 자신들의 슬로건인 "어디서든 최고의 암치료(The Best Cancer Care. Anywhere)"란 문구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이 말을 몹시 좋아하는데 모두가 베스트란 말에 담긴 자신감 못지 않게 그 베스트가 암환자를 돌보는 데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뭉쳐있다. 이것이 오늘날의 슬론케터링을 있게 하는 그들의 첫 번째 강점이다.

2) 최고의 서비스와 철저한 고객위주 시설배치

ꡐ사업가 A씨(50)는 지난해 미국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에서 피부암 치료를 받았다. 병원비.항공료 등으로 약 3억원을 썼지만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받은 데 만족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연간 5천~1만명의 국내 환자가 해외 진료를 받으며 1조원 이상을 쓰는 것으로 추정한다. 암 환자의 경우 1인당 최소 1억원을 쓴다고 한다.ꡑ

우리나라 신문에 실렸던 슬론케터링 관련 기사 가운데 일부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의료비는 비싸다. 특히 뉴욕의 슬론케터링은 엄청나게 비싸다. 그런데도 아이러니컬한 것은 슬론케터링을 이용한 환자들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고 또 이러한 환자들의 만족은 그들이 내어놓는 엄청난 기부금 액수와도 비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병원들이 대개 그러하지만 친절과 최고의 서비스는 빼놓을 없는 슬론케터링의 강점이다. 또한 환자 대기 및 진료 공간도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고 각종 검사와 관련해서는 층마다 채혈실 등 동일 시설을 갖추어 환자 동선을 최소화시켜 놓았다. 고객을 위한 일이라면 병원 건물 상층부에 매리어트 호텔을 갖다 붙이는 것도 마다 않는 저들의 마케팅 전략은 하루 입원료가 무려 300만원씩이나 되는 특실에도 줄을 서게 하고 있다.

3) 글로벌 환자유치 전략

슬론케터링 타운이라 할 수 있는 맨하탄 요오크 애비뉴 66, 67, 68가와는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산뜻한 외양의 메모리얼 슬로언케터링 국제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슬론케터링의 명성을 듣고 전세계에서 찾아오는 암환자들이 첫 번째로 들르는 곳이다. 최소한 3˜4개 국어는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상냥한 접수 데스크 아가씨들을 지나면 마치 호텔 로비를 방불케 하는 대기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은 대기의자에 앉자마자 말끔한 정장의 남자직원이 다가와 정중하게 내미는 우리말 신문에 놀라게 된다. 국제센터는 통역서비스도 잘 갖추어져있고 고객이 활용할 수 있는 각종 전산장비 및 슬론케터링과 현지 의료진이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첨단 시설들 또한 완비되어 있다.

현재 해마다 약 1000여명의 해외 환자가 국제센터를 찾고 있으며, 그 중 40%는 유럽에서, 30%는 남미에서, 9%는 아시아에서 방문하는 환자들이다. 슬론케터링의 자료에 의하면 이 중 한국인 환자도 약 20-30여명에 달한다. 슬론케터링은 자기 병원에서 치료받고 귀국하는 환자들의 사후관리를 위해 세계각국의 유수 암센터와 협력병원 계약을 맺고 있다. 국경을 넘어서는 글로벌 환자유치전략. 이것은 슬론케터링이 향후 더욱 주력하게 될 것이 분명한 또 하나의 강점이다.

슬론케터링과 한국

슬론케터링은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 탓인지 아직 국내에서는 경쟁되는 미국 병원들에 비해 인지도가 크게 높지 않다. 물론 과거 SK 그룹의 설립자인 고 최종현 회장이 신병치료차 방문했던 곳이지만 슬론케터링내에 한국계 스태프들이 많지 않은 관계로 사회 저명인사의 방문 치료소식도 별로 들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2002년 가을 한국의 암전문기관인 원자력의학원과 슬론케터링간에 협력병원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향후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2003년 10월 원자력의학원에서 제 1회 원자력의학원 슬론케터링 공동 학술대회가 개최되어 대장암과 폐암을 주제로 9명의 슬론케터링 의료진이 내한한 바 있고 내년에는 뉴욕에서 2회 학술대회를 열기로 하였다. 원자력의학원은 현재 슬론케터링 수준의 암환자 진료를 할 수 있는 국제암센터를 부지내 건립할 계획으로 있고 이를 계기로 의료진 교류 및 항암프로토콜 공유 등 세계 일류병원의 암치료 노하우가 속속 국내에 도입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 12월 17일 목요일

남한의 공산주의 追從者들


북한의 괴수들을 찬양하고 그 정권을 흠모하며 그들의 주장에 동조한
남한의 정치인들을 공산주의 추종자라고 불러주는 것은 名實相符한 呼稱이다
공산국가에서는 共産主義者(Communist)라는 호칭을 매우 神聖視하고 있으며
소련에서는 러시아어로 공산주의자 коммунист는 공산당원과 동의어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이 칭호를 기본상 사용하지 않는다
절대 다수가 고위인사의 訃告(부고)에 충실한 공산주의 戰士
堅定한 공산주의 戰士 등 형식으로 나타난다
극히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런 사람들은 모두 생전에 당의 최고위 지도자들이다
하지만 무당파 인원에게도 공산주의 전사란 말을 사용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문학가 魯迅(1881-1936) 교육가 陶行知

(1891-1946)등의 死後 기념문장에 위대한 공산주의 戰士란 표현이 나온다
高永宙(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말한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엄격히 말하면 공산주의 追從者들이다
그들은 공산당원이 아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을 공산주의 추종자라는 이유는 충분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적화통일하고 심지어 핵무기로 불바다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 극악무도한 적의 아성 북한의 괴수들을 찬양하고
그 정권을 흠모하며 그들의 주장에 동조한 남한의 정치인들을

공산주의 추종자라고 불러주는 것은 名實相符한 呼稱이며
그들도 何等의 억울해 할 이유가 없을것이다
노무현은 김정일을 만나서 자초지종 敬畏心을 갖고 임하였다
우리 보기에는 수치스럽기 짝이 없지만 노무현 본인은 오매에도
그리던 偶像을 만났으니 자연스러운 표현일 것이다
'회담'이 아니라 '(알현)謁見'이었다
NLL을 백지화하고 北核을 격려하고
반미공조를 약속했으니 이래도 공산주의 追從者가 아닌가?
시인 高恩이라는 者는 방북 후 공개적으로 金正日을 찬양하기에 열을 올렸다
동국대 강정구(姜禎求)라는 者는 만경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라고 썼고 鑑定을 맡은 성공회대 한홍구(韓洪九)라는 者는
이 말이 “학문적 견해의 하나다”라고 鑑定하였다
노무현은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
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남겼다
북한정권의 핵심인 북한의 입법기구를 이렇게 흠모하고 있었으니
공잔주의 추종자가 아닐수 없다
공산주의의 鼻祖인 마르크스 엥겔스가 만들어 낸
階級鬪爭萬能論은 인류가 만들어 낸 이론중 가장(最) 邪惡(사악)한 이론이다
이 이론이 대한민국에서는 '民衆革命論'으로 정착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民衆'은 사실 프롤레타리아 계급(무산계급)의 동의어이며
민중투쟁은 계급투쟁과 같은 뜻이다
공산주의자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하나는 계급투쟁만능론을 승인하여야 하고 또 하나는 계급의 敵(원수)에

대한 무자비한 독재(프롤레타리아 독재-無産階級專政)를 승인하여야 한다
북한에서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 人民 등은 모두 같은 뜻이다
그들에게는 독재의 대상인 적대계급이 있다 그들은 인민이 아니다
남한의 공산주의 추종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북한 罪囚들은 영원히 고려의 상대가 아니다
2007년 10월4 일 노무현은 북한 남포 서해갑문을 방문하고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라고 썼다
공산국가에서 가장 정치성이 강한 명사인 人民 두 글자를
사용함으로서 자신이 김정일과 같은 진영의 인간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공산주의 추종자가 아니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