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6일 월요일
A Scotsman
A Scotsman walking down the street sees a woman with perfect breasts. He says to her, "Hey miss, would you let me bite your breasts for $100? "Are you nuts?!!!" she replies, and keeps walking away. He turns around, runs around the block and gets to the corner before she does. "Would you let me bite your breasts for $1,000 dollars?" he asks again. "Listen you; I'm not that kind of woman! Got it?" So the S cotsman runs around the next block and faces her again "Would you let me bite your breasts just once for $10,000 dollars?" She thinks about it for a while and sa ys, "Hmmm, $10,000 dollars; Ok, just once, but not here. Let's go to that dark alley over there ." So they go into the alley, where she takes off her blo use to r eveal the most perfect breasts in the world. As soon as he sees them, he grabs them and starts caressing them, fondling them slowly, kissing them, licking them, burying his face in them, but not biting them. The woman finally gets annoyed and asks, "Well? Are you gonna bite them or not?" "Nah", say s the Scotsman... "Costs too much..."
2007년 11월 24일 토요일
새 시대ㆍ새 세대 준비하는 영국 왕실 대해부
영국은 입헌군주국이다. 많은 왕실이 근대화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대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그러나 영국 왕실은 18~19세기에 입헌군주제의 발전을 통해 근대화의 격랑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지난 20일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의 결혼 60주년이었다.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사랑받고 있는 영국 왕실의 모습을 살펴본다.
영국은 전통과 관습을 중시한다. 영국 국왕에게 부여된 ‘신앙의 옹호자’라는 호칭은 교황 레오 10세가 헨리 8세에게 내린 것이지만 종교개혁 이후 지금까지도 사용된다. 여왕이 의사당으로 연설하러 가면 하원의원 한 명은 버킹엄궁에 인질로 잡혀 있다. 왕과 의회가 대립하던 시대의 관습이 잔존하는 것이다. 영국에선 뜯어고치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그래선지 원론적으로 따져볼 때 민주주의나 민족주의와 양립하기 어려운 왕실이 건재할 수 있었다. 연원이 9세기로 올라가는 영국 왕가의 이름은 ‘윈저’다. 원래 이름은 독일계 이름인 ‘색스코버그고사’였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영국과 독일은 가까웠다. 그런데 1차대전이 터지고 독일에 대한 적대감이 퍼지자 당시 왕 조지 5세가 영국식 이름인 윈저로 개칭했다. 사실 독일어 억양이 없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윈저 계통의 왕은 1915년에 즉위한 조지 5세가 최초였다. 필립 공(에든버러 공작)의 원래 국적은 그리스이지만 가문의 뿌리는 독일계인 ‘올덴부르크가(家)’다. 찰스가 즉위하면 영국 왕실은 올덴부르크가라고 볼 수도 있게 된다. 이처럼 유럽에서 왕실 그 자체는 민족주의에 대해 이질적인 실체다. 영국은 민족주의가 야기한 전쟁에서 승전에 승전을 거듭했다. 왕실이 선봉에 섰다. 영국 왕실이 국가통합ㆍ정체성의 구심점이 되고 질서ㆍ전통ㆍ안정을 상징하게 되기까지는 강한 상무(尙武) 전통이 필요했다. 여왕도 군복무를 했다. 45년에 부왕을 설득해 군복무를 허가받았고 운전을 배워 군용트럭을 몰았다. 군주제는 민주주의보다는 독재에 더 가깝다. 군주제를 유지하며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영국은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해법을 찾아냈다. 영국 국왕은 국가원수이자 군통수권자다. 통치하지 않아도 영향력은 적지 않다. 정치적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하고 투표권도 없지만 국왕은 초(超)당파적 권위와 영향력을 자랑한다. 입헌군주제 이론을 완성한 월터 배젓(1826~1877)은 왕에게는 “의견제시ㆍ격려ㆍ경고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총리는 여왕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야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모신 총리는 모두 12명이다. 1952년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81)은 단순한 군주가 아니라 하나의 ‘제도’다. 여왕은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호주 등 16개국의 국가원수다. 54개 영연방 회원국 모두 여왕을 영연방의 수반으로 인정한다. 국회의 개원과 해산, 총리 임명, 전쟁 선포, 법령 선포도 여왕의 권한이다. 물론 모두 상징적이다. 실제로는 각국 총리가 대부분 ‘여왕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한다. 왕실은 그 상징과 명예를 선용(善用)하고자 애쓴다. 여왕을 비롯한 왕실 사람들은 매년 3000여 건의 공식 행사에 참석하고 10만 통의 편지를 받는다. 이들은 약 3000개 단체의 후원자 혹은 회장직을 맡고 있다. 여왕은 600개 단체의 후원자다. 매년 왕궁에서 개최되는 오찬ㆍ만찬ㆍ리셉션에 참석하는 인원은 7만 명이다. 왕실은 100회 생일이나 결혼 60주년을 맞는 모든 국민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 왕실은 화려한 권위와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쓴다. 왕실은 영국 최대 지주다. 버킹엄궁, 윈저성, 홀리루드궁 등 왕실 궁전에는 6000여 개의 방이 있다. 왕실을 위해 645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뉴욕 타임스는 7월 15일 왕실 유지비가 연간 최소 2억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포브스의 추산에 따르면 여왕의 공개된 재산만 6억 달러에 달한다. 정부와 의회의 재정 지원, 임대 수입, 입장료 수입, 개인 투자 수익, 예술품, 보석 등 수입과 재산을 효율적으로 운영관리하기 위해 왕실은 일급 금융전문가들을 고용한다. 그러나 왕실은 20세기 후반부터 점증하는 도전을 받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영국에서 왕실을 폐지하자는 공화주의는 반역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군주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994년에는 유력지 이코노미스트가 군주제 폐지를 공식 입장으로 밝혔다. 잇따른 왕실 사람들의 결혼 실패와 사생활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이 몰고온 파장도 컸다. 여왕은 다이애나가 아들과 이혼했기 때문에 다이애나의 죽음과 장례 절차는 스펜서 가문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왕실의 법도에 따라 처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이애나를 애도하는 영국 국민 다수는 왕실의 매정함을 비난했다. 영국의 공화주의자들에게 군주제는 능력주의(meritocracy)에도 반대된다. 찰스 왕세자는 공부를 못했는데도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시대가 바뀌었다. 선왕의 결혼식(1923)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는 결혼식이 라디오로 생중계되면 국민들이 술집에서 모자도 벗지 않고 ‘불경’스럽게 중계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직 국민 다수는 왕실의 유지를 바란다. 그러나 점증하는 수의 국민이 왕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왕실옹호론자들은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궁색한’ 옹호도 있다. 왕실이 관광산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공화주의자들은 대꾸한다. “왕이 없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도 관광객은 많다.” 세계화 시대에는 원군을 해외에서 만나기도 한다. 프랑스의 르네 도지에르 국회의원은 프랑스 대통령제 유지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며 영국 군주제가 더 저렴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왕실은 체질개선에 나섰다. 왕실 요트를 처분했으며 1993년부터는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납부하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왕실 공식 지출 규모를 공개했다. 2006년에는 버킹엄궁의 의전용 응접실까지 개방했다. 정보화 시대에도 적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여왕의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디지털 파일로 받아 볼 수 있게 됐다. 전통과 관례에 따른 의전을 고집하는 왕실로서는 상당한 변신 노력이다. 여왕이 즉위한 지 55년이 넘었다. 선왕 4명의 재위기간을 합친 것보다 더 길다. 영국 왕실의 위상은 여왕의 개인적 인기에 크게 의존했다. 영국 왕실의 미래도 어쩌면 다음 세대 왕실 사람들이 하기 나름이다. 이들이 국민의 마음을 얻고 국민의 다수가 원하면 왕실은 유지된다. 김환영 기자
영국은 전통과 관습을 중시한다. 영국 국왕에게 부여된 ‘신앙의 옹호자’라는 호칭은 교황 레오 10세가 헨리 8세에게 내린 것이지만 종교개혁 이후 지금까지도 사용된다. 여왕이 의사당으로 연설하러 가면 하원의원 한 명은 버킹엄궁에 인질로 잡혀 있다. 왕과 의회가 대립하던 시대의 관습이 잔존하는 것이다. 영국에선 뜯어고치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그래선지 원론적으로 따져볼 때 민주주의나 민족주의와 양립하기 어려운 왕실이 건재할 수 있었다. 연원이 9세기로 올라가는 영국 왕가의 이름은 ‘윈저’다. 원래 이름은 독일계 이름인 ‘색스코버그고사’였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영국과 독일은 가까웠다. 그런데 1차대전이 터지고 독일에 대한 적대감이 퍼지자 당시 왕 조지 5세가 영국식 이름인 윈저로 개칭했다. 사실 독일어 억양이 없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윈저 계통의 왕은 1915년에 즉위한 조지 5세가 최초였다. 필립 공(에든버러 공작)의 원래 국적은 그리스이지만 가문의 뿌리는 독일계인 ‘올덴부르크가(家)’다. 찰스가 즉위하면 영국 왕실은 올덴부르크가라고 볼 수도 있게 된다. 이처럼 유럽에서 왕실 그 자체는 민족주의에 대해 이질적인 실체다. 영국은 민족주의가 야기한 전쟁에서 승전에 승전을 거듭했다. 왕실이 선봉에 섰다. 영국 왕실이 국가통합ㆍ정체성의 구심점이 되고 질서ㆍ전통ㆍ안정을 상징하게 되기까지는 강한 상무(尙武) 전통이 필요했다. 여왕도 군복무를 했다. 45년에 부왕을 설득해 군복무를 허가받았고 운전을 배워 군용트럭을 몰았다. 군주제는 민주주의보다는 독재에 더 가깝다. 군주제를 유지하며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영국은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해법을 찾아냈다. 영국 국왕은 국가원수이자 군통수권자다. 통치하지 않아도 영향력은 적지 않다. 정치적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하고 투표권도 없지만 국왕은 초(超)당파적 권위와 영향력을 자랑한다. 입헌군주제 이론을 완성한 월터 배젓(1826~1877)은 왕에게는 “의견제시ㆍ격려ㆍ경고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총리는 여왕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야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모신 총리는 모두 12명이다. 1952년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81)은 단순한 군주가 아니라 하나의 ‘제도’다. 여왕은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호주 등 16개국의 국가원수다. 54개 영연방 회원국 모두 여왕을 영연방의 수반으로 인정한다. 국회의 개원과 해산, 총리 임명, 전쟁 선포, 법령 선포도 여왕의 권한이다. 물론 모두 상징적이다. 실제로는 각국 총리가 대부분 ‘여왕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한다. 왕실은 그 상징과 명예를 선용(善用)하고자 애쓴다. 여왕을 비롯한 왕실 사람들은 매년 3000여 건의 공식 행사에 참석하고 10만 통의 편지를 받는다. 이들은 약 3000개 단체의 후원자 혹은 회장직을 맡고 있다. 여왕은 600개 단체의 후원자다. 매년 왕궁에서 개최되는 오찬ㆍ만찬ㆍ리셉션에 참석하는 인원은 7만 명이다. 왕실은 100회 생일이나 결혼 60주년을 맞는 모든 국민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 왕실은 화려한 권위와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쓴다. 왕실은 영국 최대 지주다. 버킹엄궁, 윈저성, 홀리루드궁 등 왕실 궁전에는 6000여 개의 방이 있다. 왕실을 위해 645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뉴욕 타임스는 7월 15일 왕실 유지비가 연간 최소 2억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포브스의 추산에 따르면 여왕의 공개된 재산만 6억 달러에 달한다. 정부와 의회의 재정 지원, 임대 수입, 입장료 수입, 개인 투자 수익, 예술품, 보석 등 수입과 재산을 효율적으로 운영관리하기 위해 왕실은 일급 금융전문가들을 고용한다. 그러나 왕실은 20세기 후반부터 점증하는 도전을 받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영국에서 왕실을 폐지하자는 공화주의는 반역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군주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994년에는 유력지 이코노미스트가 군주제 폐지를 공식 입장으로 밝혔다. 잇따른 왕실 사람들의 결혼 실패와 사생활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이 몰고온 파장도 컸다. 여왕은 다이애나가 아들과 이혼했기 때문에 다이애나의 죽음과 장례 절차는 스펜서 가문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왕실의 법도에 따라 처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이애나를 애도하는 영국 국민 다수는 왕실의 매정함을 비난했다. 영국의 공화주의자들에게 군주제는 능력주의(meritocracy)에도 반대된다. 찰스 왕세자는 공부를 못했는데도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시대가 바뀌었다. 선왕의 결혼식(1923)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는 결혼식이 라디오로 생중계되면 국민들이 술집에서 모자도 벗지 않고 ‘불경’스럽게 중계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직 국민 다수는 왕실의 유지를 바란다. 그러나 점증하는 수의 국민이 왕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왕실옹호론자들은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궁색한’ 옹호도 있다. 왕실이 관광산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공화주의자들은 대꾸한다. “왕이 없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도 관광객은 많다.” 세계화 시대에는 원군을 해외에서 만나기도 한다. 프랑스의 르네 도지에르 국회의원은 프랑스 대통령제 유지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며 영국 군주제가 더 저렴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왕실은 체질개선에 나섰다. 왕실 요트를 처분했으며 1993년부터는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납부하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왕실 공식 지출 규모를 공개했다. 2006년에는 버킹엄궁의 의전용 응접실까지 개방했다. 정보화 시대에도 적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여왕의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디지털 파일로 받아 볼 수 있게 됐다. 전통과 관례에 따른 의전을 고집하는 왕실로서는 상당한 변신 노력이다. 여왕이 즉위한 지 55년이 넘었다. 선왕 4명의 재위기간을 합친 것보다 더 길다. 영국 왕실의 위상은 여왕의 개인적 인기에 크게 의존했다. 영국 왕실의 미래도 어쩌면 다음 세대 왕실 사람들이 하기 나름이다. 이들이 국민의 마음을 얻고 국민의 다수가 원하면 왕실은 유지된다. 김환영 기자
삶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읍니다
삶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졸졸 쉴새없이..흘러내리는 시냇물은 썩지 않듯이,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언제나 활기에 넘치고,
열정으로 얼굴에 빛이 납니다.
고여있지 마시길...
멈춰있지 마시길...
삶은 지루한 것이 아닙니다.
삶은 권태로운 것이 아닙니다.
삶은 신선해야 합니다.
삶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삶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하고 몰두할 때 행복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결코 아는 자가 되지 말고
언제까지나 배우는 자가 되십시오.
고민은 어떤 일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생기기보다는
일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데에서 더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망설이기보다는 불완전한 채로 시작하는 것이
한 걸음 앞서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새로움으로 다시 시작해 보세요.
그리고 어떠한 경우라도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항상 열어두도록 하세요.
마음의 밀물과 썰물이 느껴지지 않나요?
밀물의 때가 있으면, 썰물의 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삶이란,
어쩌면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행운과 고난의 연속 드라마인 것을...
하루치의 발전된 삶이 아름다운 당신에게도 있었기를 소망합니다.
- 아름다운 편지 중에서 -
2007년 11월 21일 수요일
Aurora

[―꽝][極光] <명사> ≪지리≫ 지구의 남북 양극에 가까운 지방의 공중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양의 아름다운 빛 현상.
<동의어> 오로라(aurora).
눈에 보이지 않는 오로라, 알래스카의 초록 오로라 장관 [팝뉴스]
미항공우주국 사이트가 19일 오늘의 천문학 사진으로 선정한 사진이다. 모든 오로라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일부 오로라는 눈에 보이지 않고 카메라로 촬영해야만 보인다. 너무 희미해 맨 눈으로 볼 수 없는 오로라는 불가시 오로라 (sub-visual aurora)이라 부른다. 인간의 눈은 1초의 몇 분의 1 정도 동안 빛을 누적시킬 뿐이지만 카메라 셔터는 무한정 열어놓을 수 있으므로, 이런 희미한 오로라도 촬영해낼 수 있다. 미국 앨리스카 주노에서 촬영된 사진은 지평선 부근의 초록색 불가시 오로라의 신비한 모습을 담고 있다. 오로라는 지구 자기장와 충돌하는 태양 방출 에너지 입자에 의해 일어난다. 전자와 양자와 같은 에너지 입자는 지구 극지방 위로 비 내리듯 쏟아지다 공기와 부딪히고 그 결과 충격을 받은 공기 분자는 일시적으로 전자를 잃는다. 그리고 공기 중 산소 분자가 전자를 다시 취하게 되면 초록색이 하늘을 뒤덮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로라이다.
2007년 11월 19일 월요일
호암 이병철 회장

이병철회장 20주기와 사업보국(事業報國)
19일 이병철 회장 20주기..'사업보국' 기치로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 삼성사태로 호암 20주기 빛바래..`조용하다` 못해 `초라하다`는 느낌도 호암 "신용이란 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삼성 위기 극복할지 주목
입력 : 2007.11.18 12:52
[이데일리 지영한기자]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잘 알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다행히 나는 기업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事業報國)에 있다는 신념에도 흔들림이 없다."
▲ 호암 이병철 회장.삼성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의 말이다. 호암은 1976년 11월 전경련 회보에 '나의 경영론'이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나의 갈길은 사업보국에 있다"라고 밝혔다. 지금은 '사업보국'이 호암의 기업가 정신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사용되고 있다. 호암은 '선도적인 기술혁신으로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고 수출과 고용과 소득을 늘리며 경영합리화로 잉여를 많이 올려 기업확장의 재원을 마련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기업인의 본분이며 사회적 의무라고 밝혔다. 사업보국의 의미를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호암은 1938년 일제치하의 암흑기에 사업에 뛰어들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을 창업하고 육성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가난과 고난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인지 그는 '사업보국'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호암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지 19일자로 20주년이 된다.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으로선 떠들석하게 추모행사를 치를 만도 하다. 하지만 삼성은 '비자금 로비' 의혹으로 어수선한 주변 분위기를 감안해 '조용한' 추모식을 갖기로 했다. 지난 10주기 때만 해도 1000여명의 각계 각층 인사가 고(故)이병철 회장의 호를 딴 '호암아트홀'에 모여 별도의 추모행사를 가졌다. 올해는 가족과 친척, 회사 관계자, 고인과 가까웠던 일부 지인 등 250명 정도가 호암 묘소에서 간단한 추도식을 갖는다. 호암의 20주기는 삼성사태와 맞물려 '조용함'을 떠나 '초라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호암이 걸어온 발자취 만큼은 지울 수 없다. 호암은 1910년 2월 12일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1987년 11월19일 지병인 폐암으로 77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한국 산업史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故 이병철 회장은 1930년대 일본 유학생활을 중도에 그만두고 귀국해 수년간의 고민과 사색 끝에 '일제 식민지하에서 민족경제의 건설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사업에 투신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호암은 마산에서 정미업, 운수업, 부동산업 등을 하며 사업경험을 쌓았고, 1938년 3월 대구시 수동에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삼성상회는 대구 근교에서 수집한 청과물과 포항 등지에서 들여온 건어물을 중국과 만주에 수출하는 일종의 무역일을 했다. 호암은 본격적인 무역업에 뛰어들기 위해 1948년 11월 서울 종로2가 영보빌딩 근처의 2층 건물에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했다. 이후 삼성은 식품, 섬유사업, 중화학공업, 반도체산업 등에 뛰어들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2001년 세상을 떠난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호암은 자신의 치밀한 판단력과 혜안으로 삼성이라는 대그룹을 일구었으며, 오늘날 삼성이 한국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놓았다"고 회고했다. 아산은 또 "호암은 성공을 위한 치열한 승부근성을 갖고 자신의 단점을 되짚어 스스로 고쳐가며 성공의 길을 현실화시켜 나갔다"며 "삼성이 걸어 왔던, 말만큼 쉽지 않았던 그 길의 한 가운데에는 바로 호암이 있었다"고 밝혔다. 예컨대 "반도체사업에 삼성이 진출하였을 때 누구도 이 사업이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거두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단기간에 반도체가 성공하기까지는 중간의 고비에서 (호암이) 자신의 장, 단점을 살펴 단점을 극복하여 성공을 현실화 시켜왔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삼성은 호암이 만들어 놓은 발판으로, 이건희 회장 취임이후 지난 2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호암 타계후 이건희 회장 체제에서 삼성그룹의 자산은 작년말 261조원으로 23배나 늘었고, 삼성의 매출은 국내총생산(GDP)의 6분의 1, 수출은 한국수출의 21%나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삼성은 호암 타계 20주년인 올해 최대 고비를 맞이하고 있다.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삼성 비자금 로비 의혹'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폭로내용의 진위여부를 떠나 '사업보국'을 기치로 한국경제 발전에 일조했다고 자부하는 삼성으로선 큰 상처를 입게 됐다. 호암은 생전에 "장기적인 사업에 있어서는 신용이 제일이고, 신용이란 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나 다름없다"면서도 "신용만큼 잃기 쉬운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호암 타계 20주년과 창립 70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삼성이 '비자금 로비' 의혹을 극복하고 한국 대표기업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계속 이어갈지 주목된다.
황혼의 사랑이 더 아름답다

‘황혼의 사랑’이 더 아름답다
치매 남편위해 은퇴한 美대법관 ‘순애보’ 화제 “새 연인 생긴 남편이 행복하다면 나도 기쁘다”
▲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미 연방대법관‘노년의 사랑(old love·묵은 사랑이란 뜻도 된다),
그만큼 값진 것은 없다.
’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를 앓는 남편을 간병하기 위해 은퇴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O’Connor·77) 전 미 연방대법관의 ‘순애보’가 알려지면서 ‘황혼의 사랑’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19일 보도했다.
오코너 전 대법관의 아들이 최근 한 TV에서 전한 부부의 사연은 이랬다.
오코너는 17년째 투병 중인 남편(77)을 돌보기 위해 작년 법복을 벗었다.
하지만 남편은 55년 해로한 아내를 두고 요양원의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놀라운 것은 오코너 전 대법관의 반응.
“엄마는 아빠가 평안을 찾고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을 뿐 불평하지 않았다”고 아들은 전했다.
노년의 사랑은 그동안 청춘의 사랑에 가려 있었다.
가요와 영화, 문학은 온통 청춘의 사랑을 말했고, 노년의 사랑은 ‘추잡한 노인네’ ‘늙은 요부(妖婦)’란 표현에서 보듯 거북하거나 꺼림칙한 것인 양 내몰렸다 .
하지만 수명이 늘고 성에 보다 개방적인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를 먹으면서 은발의 사랑은 무시할 수 없는 ‘현상’으로 떠올랐다.
학자들은 노년의 사랑이 청춘기의 사랑보다 더 만족스럽다고도 한다.
“젊은 시절 사랑은 자기 행복을 위한 것이지만 황혼의 사랑은 다른 누군가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이라고 심리학자 매리 파이퍼(Pipher)는 말한다.
스탠퍼드대 장수연구소의 로라 카스텐슨(Carstensen) 소장은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며 “그 과정에서 경험들은 더 소중해지고 풍성해진다”고 진단했다.
과학자들은 뇌 단층사진까지 제시한다.
젊은층은 부정적인 장면에 민감하고 감정의 극단을 오가지만, 노년층은 긍정적인 장면에 반응하고 감정 기복에도 더 잘 대처한다.
뇌는 또 나이가 들면서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행복을 더 잘 느끼게 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청춘의 사랑만 예찬할 게 아니라 노년의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파이퍼 박사는 “서로를 위해 헌신하고 공동의 선을 위해 일하는 문화를 원한다면 나이든 이들의 사연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입력 : 2007.11.20 01:10
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임대료-뉴욕5번가
`뉴욕5번가` 임대료 최고…1㎡ 당 1500만원에 달해
전 세계에서 점포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은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로 평방피트당 연간 임대료가 처음으로 1500달러(㎡당 1만6146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중개업체 쿠시먼 앤드 웨이크필드에 따르면 5번가 `황금지대` 도로변 1000평방피트(93㎡) 점포의 연간 임대료는 150만달러(13억8000만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블룸버그뉴스가 보도했다.
작년에 비해 11%, 5년 전에 비해선 두 배나 오른 것으로 이는 달러 약세때문으로 풀이된다.
전 세계에서 점포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은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로 평방피트당 연간 임대료가 처음으로 1500달러(㎡당 1만6146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중개업체 쿠시먼 앤드 웨이크필드에 따르면 5번가 `황금지대` 도로변 1000평방피트(93㎡) 점포의 연간 임대료는 150만달러(13억8000만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블룸버그뉴스가 보도했다.
작년에 비해 11%, 5년 전에 비해선 두 배나 오른 것으로 이는 달러 약세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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