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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0일 토요일

월가의 탐욕이 키운 파생상품의 덫

월가의 탐욕이 키운 파생상품의 덫
선진기법 앞세워 승승장구하다 신용경색에 금융사 공멸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 한곳 부실 발생하자 부도 도미노
'난공불락(難攻不落)'이라더니 '추풍낙엽(秋風落葉)'이 따로 없다. 전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던 글로벌 금융사들이 신용경색이란 쓰나미에 잇따라 주저앉고 있다. 158년 역사를 자랑하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갔고 업계 3위 메릴린치는 BOA에 인수됐다. 앞서 업계 5위 베어스턴스는 주당 2달러라는 헐값에 JP모건에 넘어갔다. '빅5' 중 목숨을 부지한 1, 2위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도 각자 살길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보험업계를 주물렀던 AIG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하루에만 증시에서 수십조 원씩 증발하는 장면을 손놓고 바라보는 사실상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부실이 더 불거질지, 얼마나 많은 업체가 더 쓰러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첨단 금융공학으로 무장한 선진 금융기법이라던 파생상품이 낳은 참혹한 결과다. ◆ 리먼 붕괴는 자업자득
= 미국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로버트 새뮤얼슨은 "월가는 지금 공포와 탐욕의 무게에 눌려 붕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월가에서는 리먼브러더스의 몰락을 그간의 공격적 영업행태에 따른 자업자득이라고 보고 있다. 본래 투자은행(IB)은 상업은행과 달리 자기자본은 작지만 자산운용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적어 M&A, 자기자본(PI) 투자, 높은 레버리지 차입은 물론 적극적인 파생상품 투자를 즐겨왔다. 그리고 리먼브러더스는 이러한 공격적 IB의 대명사였다. 리먼의 자본금은 씨티그룹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다. 적은 자본을 투하하는 레버리지 투자는 그 속성상 호황기에는 고수익을 안겨주는 반면 불황기에는 엄청난 투자 손실과 자본 잠식의 위험성을 갖고 있다.
미국 정책당국의 대출에 대한 감독 부실과 지난 2004년 이후 유지해온 1%대 낮은 금리 수준도 한몫을 했다. 문제가 된 서브프라임 대출이란 신용불량자에 대한 대출인 데다 부채자산비율(LTV)도 80%를 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9ㆍ11 테러와 IT 버블 붕괴 우려 등으로 2000년 당시 6% 수준이던 정책금리를 2001~2004년 중 1%대까지 지나치게 내리는 우를 범했다. 가계와 금융회사들이 저금리를 보고 앉아 있을 리 없다. 가계들이 주택을 사려고 아우성치자 주택가격은 치솟았고, 수익성 제고에 혈안이 된 금융회사들은 위험한 투자도 마다하지 않게 됐다. 2004년부터 FRB는 과잉유동성을 억제하고자 2년 동안 금리를 5% 수준으로 인상하였다. 그러나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차입을 늘렸던 가계와 금융회사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었다. 투기수요도 침체됨에 따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은 하락하고 모기지업체와 관련 파생상품 투자회사들의 건전성이 최악으로 치닫게 됐다. ◆ 신용파생상품의 미래는 = 신용파생상품이 갖는 맹점은 복잡한 구조와 다단계 유동화로 신용위기 발생시 기초자산과 보장책임자를 추적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자산담보부증권(CDOㆍCollatoral Debt Organization)은 1차 발행에서 끝나지 않고 이것의 2차, 3차 CDO가 발행되고, 신용부도스와프(CDSㆍCredit Default Swap)도 초기 보장 매도자가 자신의 위험회피 목적으로 다시 제3 기관으로부터 보장을 매입하고 이러한 과정이 중복되면서 출발점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최근 파산한 리먼의 보유자산 가치를 산정하는데 길게는 1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 금융회사의 부실위험이 다음 기관으로 전이되는 거래상대방 위험은 신용파생상품의 치명적인 덫이다. 실제 올해 초 미국 모노라인 보험사들이 붕괴되면서 이들과 CDS 거래를 맺은 금융회사들이 연쇄적으로 부실해졌다. 최근 미국 금융당국이 AIG에 대해 구제금융을 결정한 것도 AIG로부터 CDS 보장계약을 구입한 금융회사의 연쇄 파산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정확한 신용평가가 어렵고 신용평가회사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부적절한 신용평가의 가능성도 상존한다. 기초자산의 위험이 모두 다를 뿐더러 이들이 내재한 부실위험이 상호 관련되어 있는 것도 부도율 산정을 어렵게 한다. 과거 한 시점에서 평가가 적절했더라도 시장 상황이 바뀌면 부적절해질 수 있다. 전 세계가 신용파생상품으로 신음하고 있어 당분간 파생상품 시장은 정체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CDO는 시장의 신뢰성 상실로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에 비해 발행규모가 10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도 중소형 은행의 부실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미국의 신용위기는 진행형이다. 게다가 미국 정부가 파생상품에 대한 감독을 강화할 전망이어서 당분간 미국 금융시장은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재준 인하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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