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 검색

2007년 9월 27일 목요일

위기의 부부

위기의 부부, 의처증에서 빠져나오는 법 [조인스]

사랑해 결혼했기 때문에 상대방을 구속한다?

결혼이라는 형식 안에서 사랑은 더욱 완고해져야 하지만 때로는 그 틀 때문에 심한 구속을 받아도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놓기 힘든 경우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부부 사이의 일은 개인적인 가정사이고 남편이 부인을 감시(?)하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더욱 더 주위 사람들이 끼어들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서 배우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가정 파탄에까지 이르는 남편 또는 부인의 행동은 진정 과도한 사랑에 불과한 것일까.

◇ 의처·의부증, 사랑이 아닌 ‘병’

대부분 배우자에게 의처증이나 의부증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이 지나친 것이라고 말하지만 의처증과 의부증은 사랑이 아닌 병으로 정신과적으로는 망상장애의 한 종류로 분류된다.

의처증과 의부증이 망상장애로 분류되는 것은 이들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득해도 전혀 변하지 않는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보통의 사람들은 배우자에게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을 때 아니라는 증거가 나오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을 깨닫지만 의처증과 의부증 환자들은 이를 믿지 않고 오히려 배우자의 불륜에 대한 증거를 찾고 싶어 한다.

서울백제병원 노만희 원장은 “의처증이나 의부증에서 발견되는 망상을 '질투망상'이라 하는데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오델로'라는 작품이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해서 '오델로 증후군'이라고도 한다”고 설명한다.

다시 설명하자면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질투망상과 그 망상 때문에 행동이상이 동반될 때는 의처증이나 의부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환자들은 다른 면에서는 정상적인 행동 양상을 보이므로 고통을 당하는 배우 자 외에는 그 문제를 알 수가 없다는 것.

따라서 의처증이나 의부증에 대한 상담은 많으나 실제 치료로 연결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말이다.
뿐만 아니라 환자는 자신의 사랑을 합리화시키려 하고 주위 가족들 또한 의심을 받는 배우자가 정말 의심을 받을만한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부터 내어놓아 배우자는 더욱 고통이 가중될 수 있다.

◇ 치료 쉽지 않은 의처증, 시간도 많이 필요

의처증이나 의부증 환자 중에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까다롭고 꼼꼼하며 다른 사람의 태도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하고 과장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 심리적으로도 배우자에게 열등감이 있거나 지기 싫어하고 또는 자존심에 깊은 손상을 받았을 때에도 배우자를 의심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부부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싶을 때에도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의부증이나 의처증은 환자 본인이 사랑을 원인으로 꼽기 때문에 병원까지 오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치료도 쉽지 않다.
이에 분당차병원 정신과 최태규 교수는 “우선 가족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부터 치료에 대한 동의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며 “치료적 관계가 형성된 후에는 환자의 믿음이 생활에 어떻게 지장을 초래하는지를 일깨워주는 식으로 망상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환자의 증상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은 긍정이나 부정 대신 환자가 왜 그런 증상을 가지게 됐는지 환자의 고통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가족치료나 부부치료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불신으로 인해 부부치료로 들어가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한편 의처증 증상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망상장애로 인한 것은 아니며 정신분열증이나 우울증, 알콜중독 등 다른 많은 정신과 질환에서도 생길 수 있는 만큼 전문의들은 구체적인 원인 파악부터 실행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당부한다.

【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2007.09.28 08:53 입력

2007년 9월 15일 토요일

가까운 사이일수록 지켜야 할 것

남과 허물없이 지낸다고 해서
너무 버릇없게 구는 사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짝이는 별은
사람 곁에 가까이 오지 않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그 빛을 잃지 않는 법이다.

항상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
존경의 마음을 갖기가 어렵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조심스럽게 감추어졌던
상대방의 결점이 차차 눈에 띄게 마련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너무 친해져서
버릇없는 사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윗사람이면 예절을 잃고,
아랫사람이면 위엄을 잃게 된다.

더구나 어리석고 예의를 차릴 줄 모르는
속된 사람과는 결코
허물없이 지내서는 안 된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

'성공을 위해 밑줄 긋고 싶은 말들' 중에서

2007년 9월 12일 수요일

인생이란 원래 불공평한 거다

인생이란 원래 불공평한 거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기억

내 인생에 가장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은 아니었는데,
어떤 선생님께서 우리 반에 들어오셨고

아이들은 산만하게 떠들었던 거 같다.
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하셨다.

산만하게 떠드는 아이들을 제압하시려고
아이들에게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으라고 하셨던 거 같다.

아이들은 모두 조용하게 바른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교실은 조용해졌다. 교실에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때였다. 내 앞의 옆 자리에 앉은 녀석이 눈을 떴다.
평소에도 말썽을 많이 부리는 그런 녀석이었는데,

그 녀석이 선생님 말씀을 안 듣고 눈을 살짝 뜨면서
다른 아이들의 얼굴을 힐끔 힐끔 살피는 것이었다.

아닌척하면서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실눈을 뜨면서 확실히 눈을 감지 않았다.

나는 참을 수 없는 정의감에 불타올랐다.
그래서 손을 들고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누구누구가 눈을 떴습니다."
"눈을 감으면 그런 건 보이지 않습니다. 눈을 감아요."

"그러니까, 눈을 감아야 하는데,
누구누구는 자꾸 눈을 떠요, 선생님."

"내가 눈을 감으면 다른 사람이 눈을 뜨는 건 보이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눈을 감아요."

나는 너무 억울했다.
나는 내 앞의 옆의 녀석이 불의를 저지르는 걸 봤다.

분명 그 녀석은 자꾸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나는 정의를 실현해야 했다.

그래서 손을 들고 선생님께 말씀 드렸던 거다.
하지만, 나의 정의는 구현되지 않았다.

왜 선생님은 저런 나쁜 녀석에게 벌을 주지 않으시는 걸까.
나는 너무나 억울해서 그날이 계속 계속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가끔 너무나 억울한 일들을 당한다.
그럴 때는 인생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너무나 불공평하고
악당이 정의로운 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많은 억울한 일들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당한 억울한 일과 비슷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성숙해져야 하는 거 같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거다.

불평하지 말고 그걸 받아들여라.
불평보다는 불공정한 인생을 인정하면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해라.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조언이다.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하다.
누구는 돈이 많은 부모를 만나고 누구는 가난한 집에 태어난다.

누구의 부모는 학식이 많고 교양이 있고 문화적인 유산이 많지만,
누구는 엄마 아빠의 얼굴도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다.

누구는 키가 크고 얼굴도 잘생기게 태어났지만, 누구는 한번도
날씬했던 몸을 평생 갖지 못하고 작은 키로 항상 콤플렉스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누구도 이렇게 불공평한 인생을 바로잡을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불평이 아니라

불공평함을 일단 인정하고
자신의 상황에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을 사는 거다.

인생을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부잣집 아들이 아닌 것을 불평한다.

하지만, 그를 보면 똑똑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뚱뚱하기 때문에 저주 받은 인생이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그를 보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너무나 많은 걸 부모로부터 받고 태어난 사람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불평 불만 역시 끝이 없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어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불만과 불평은 어쩌면 그 사람의 인격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성숙해져야 한다.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투덜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이너스를 만드는 생각의 늪에 빠지기 쉽다.

그 사람의 생각의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은
마이너스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하고 플러스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마이너스 리더십은 마이너스를 만들고
플러스 리더십은 플러스를 만든다.

가령, 일제 시대에 누가 누가 잘못했나.
누가 친일을 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생각이 마이너스 리더십이라면,

그 어려운 시기에 누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플러스 리더십인 거다.

"저 여자는 창녀입니다. 죄인입니다."라고 돌을 들고 치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하셨다.

죄 지은 사람에게
돌을 던져서 앙갚음을 하는 것보다는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더 먼저 생각하는 것이
플러스를 만드는 생각인 거다.

우리에게는 착한 마음이 있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는 힘이 되어주고 싶다.

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부잣집 아들을 별다른 이유 없이 패주는 걸로 나타나서는 절대 안 된다.

인생을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무엇인가 플러스를 만드는 삶을 만들어보자.

이미 많은 걸 받았으면서도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투정하고 불평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지 말자.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상을 위해서
내가 무엇이라도 도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받고
누리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박종하 님의 <창의력 에세이> 중에서

2007년 9월 11일 화요일

바람처럼 떠날수있는 삶

바람처럼 떠날수있는 삶

늘 태어났다고 생각하며 살아라.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며 살아라.
오늘 하루가 내 생의 전부라면
오늘 하루는
얼마나 아쉬운 날이 될까요.

가끔씩 생각해봅니다.
오늘 하루가 내 생의 전부라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하고 말이죠.
솔직히 말해서 슬플 것만 같습니다.

그것은 곧 이별의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이 모든 것들과
만날 수 없다는 단정적 이별.
그 이별의 명확성이 눈물로 다가섭니다.

아마도 집착의 결과가
이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려서부터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눈물이 나지 않을 만큼만
머물다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짐들이
몇번이나 깨어졌습니다.
더러더라 눈물을 머금으며 살기도 했고
눈물을 흘리며 살기도 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따뜻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눈물은 자꾸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것은 세상 모든 것이 안개와 같고
활과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잊은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냥 바람처럼 어느 자리에서도
떠날 수 있는 삶을
직은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열심히 산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의 본래 모습을 깨달아야
비로소
바람과도 같은 삶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집착하지 않고 열심히 바라볼 때
그때 비로소
오늘 하루가 영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쉬움 없이 보내는
생의 그날을 기다립니다.

-성전스님-

Humor

재판장과 부인

남자가 부인을 총으로 쏘아 죽인 혐의로 법정에 섰다.

재판장이 남자에게 물었다.
재판장:왜 부인을 죽였나요?
남자:마누라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지 뭡니까.
그래서 너무 분해서 쏘았지요!

재판장:그럼 그 상황에서 댁의 부인과 바람을 함께 피웠던 남자 중에 누가 더 밉던가요?
남자:그 남자 놈이 더 미웠지요.
재판장:그런데 왜 남자를 죽이지 않고 부인을 쏘았지요?
그러자 남자는 격양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남자:저도 처음엔 그러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그러다가는 여러 놈 죽이겠더라고요!

기사 게재 일자 2007-09-10

2007년 9월 9일 일요일

미국영어

미국영어 (美國英語)

요약
⇒ 영어

설명

인도유럽어족 게르만어파의 서게르만어계에 속하는 언어. 현재 세계의 6대륙 어디서나 사용되며, 6대륙의 총인구 중 7명에 1명은 어떤 형태로든지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모어(母語)인 경우나 제2언어인 경우도 있고, 단지 외국어로서 쓰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영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이 명확하게 한정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곧 알 수 있다. 우선 첫째로 영어는 갖가지의 변종이 있다. 영국의 영어, 미국의 영어, 캐나다의 영어,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의 영어, 인도·파키스탄의 영어, 아프리카의 영어 등이 모두 영어이다. 영국이나 미국의 내부에는 여러 가지의 방언이 있으며, 방언 가운데는 지역적인 것이나 계급적인 것도 있다. 런던의 다운타운에서 쓰이는 말이나 미국의 흑인영어는, 영국이나 미국의 이른바 표준적인 영어와는 다르지만, <영어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역적인 범위에 덧붙여 시간적인 흐름도 있다. 젊은이의 영어, 늙은이의 영어, 1000년 전의 영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손들의 영어 등도 당연히 영어 속에 포함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명학하게 경계를 결정하면서 그 대상을 제시하기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보면, <영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는, 현실적으로 사용되는 영어의 표본보다는 오히려 그 표본을 낳게 한 바탕으로서, 거의 동질적이며 추상화되고 이상화(理想化)되어 있는 규칙체계를 1차적인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영어의 성립

현재 영국의 표준어는 런던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사용되는, 교양있는 사람들의 영어이다. 이른바 표준영어는 15∼16세기의 런던영어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의 영어는 초기 근대영어라고 불리며, W. 셰익스피어나 《흠정역성서(欽定譯聖書)》 등의 영어가 대표적이다. 이 시기의 런던 영어가 현재의 표준영어의 직접적 선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런던이 정치·상업 등의 중심지였던 데에 기인한다. 옥스퍼드·케임브리지의 두 대학이 비교적 가까이 있었던 것도 관계가 있다. 영어는 거의 현재의 형태로 굳어지기 시작하고부터 약 500년의 역사를 가진 셈이 되는데, 이 초기 근대영어를 그 이전 단계의 영어와 비교해볼 때, 그것의 가장 큰 특색은 어순(語順)의 확립과 철자(綴字)의 고정이라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어순의 확립이라는 현상은 영어에서 볼 수 있는 두드러진 특색이다. 그것은 풍부한 굴절어미의 소실이라는 현상과 맞바꿈으로써 얻은 특성이며,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이상으로 핵심적인 영어의 특성이다.

계보 관계

영어에 있어 가장 오래된 문헌은 7세기 말 무렵의 것이다. 그러나 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의 문헌은 매우 적으므로 실질적인 영어의 역사는 약 1000년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의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륙에서 사용하던 언어에 도달하고, 궁극적으로는 인도-유럽조어(祖語;Proto-Indo-European)에 닿게 된다. 인도-유럽조어란 약 5000년 전에 유럽남동부에 사용되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언어로서, 그 어족의 하나에 게르만어파(Germanic)가 있었으며, 그것은 서게르만어·북게르만어·동게르만어로 분화하였다. 영어는 독일어·네덜란드어·플라망어·프리지아어 등과 더불어 서게르만어에 속한다. 영어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프리지아어이다. 결국 영어는 아이슬란드에서 인도에 미치는 유럽 및 아시아 서부에서 쓰이고 있는 온갖 언어와 계보적으로 이어져 있지만, 직접적인 자매관계가 있는 것은 서게르만어에 속하는 언어뿐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지아어·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힌디어는 모두 영어와 관계가 있지만, 친근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이 차례로 낮아진다. 인쇄된 책의 판면을 보면 영어가 독일어보다 프랑스어와 더 친근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영어가 프랑스어 계통의 말을 많이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기초적인 단어를 비교해 보면 독일어와의 친근성이 더 높다.

시대 구분과 각 시기의 특색

영어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고기영어(古期英語;Old English, OE), 중기영어(中期英語;Middle English, ME), 근대영어(近代英語;Modern English)의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고기영어는 대체로 7세기부터 1100년까지, 중기영어는 1100년부터 1500년까지, 근대영어는 1500년 이후의 영어를 말하며,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영어를 특히 현대영어(現代英語;Present-day English, PE)라고 한다. 고기영어는 앨프레드대왕의 영어를 대표로 들 수 있고, 중기영어는 G. 초서의 영어를 대표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고기영어와 중기영어를 나누는 역사상의 대사건은 1066년의 윌리엄 1세에 의한 영국 정복(Norman Conquest)이고, 중기영어와 근대영어의 사이에는 15세기 말 무렵의 인쇄술 도입이 있었다. 굴절어미라는 각도에서 보면, 고기영어기는 완전 굴절의 시대, 중기영어기는 굴절어미 수평화의 시대, 근대영어기는 무굴절 시대로 불린다. 고기영어의 특색은 오히려 현대의 독일어와 비슷하며, 굴절어미는 현대의 독일어보다 풍부하였다. 약 10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영어는 그 굴절어미의 대부분을 떨쳐버렸는데, 독일어는 그것들을 거의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영어는 독일어보다 혁신적인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 고기영어의 명사에는 4개의 격(格)이 있고, 그 각각에는 단수형과 복수형의 구별이 있으며, 명사마다 성(性)이 정해져 있었다. 형용사는 품사 가운데 가장 많은 굴절어미를 가지고 있었고, 이론적으로 가능한 굴절형의 수는 180개에 달하였다. 다시 말해서 형용사는, 함께 쓰이는 명사와 수·격·성에 있어 일치하며, 따라서 단수형·복수형, 남성형·여성형·중성형의 구별이 있고, 약변화와 강변화가 있으며, 비교변화도 가지고 있었다. 동사의 경우, 인칭어미는 현대영어에서는 3인칭·현재·단수일 때 -s가 붙을 뿐이지만, 고기영어에서는 모든 인칭에 인칭어미가 붙고, 단수형과 복수형은 형이 다르며, 과거형에 있어서도 단수형과 복수형은 달랐다. 굴절어미가 풍부하면 문장 중에서의 단어와 단어 사이의 문법관계는 굴절어미에 의해서 분명해지므로 어순은 비교적 느슨하였는데, 중기영어에서는 굴절어미가 수평화하여 서로 구별되지 않게 됨에 따라 어순은 점차 고정화되어, 굴절어미에 의해 표시되던 문법관계는 주로 어순에 의해서 표시되었고, 또 전치사를 사용하는 일이 차츰 많아지게 되었다. 고기영어에서 중기영어로의 추이에 관하여 특히 주목할 것은 방언의 성쇠현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고기영어에 있어 문학상의 표준어로 간주되었던 것은 웨스트색슨방언이라고 하는, 영국의 남부에서 서부에 걸쳐 사용되던 방언이었다는 사실이다. 앨프레드대왕이 사용하였던 것도 이 방언이다. 이것은 현대 영국 표준어와 약 1000년 전의 표준어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웨스트색슨의 문학 표준어로서의 전통은 노르만인의 정복에 의해서 단절되었고, 그 후에 나타난 여러 방언 가운데서 런던방언이 우위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현재의 표준어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중기영어를 특징짓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점은, 노르만인의 정복으로 인한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프랑스어의 유입과 굴절어미의 소실이라는 2가지 점으로 집약할 수 있다. 먼저, 지배계급의 언어는 프랑스어의 한 방언인 노르만프랑스어 일색이 되었고, 이런 상태가 약 300년간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한때는 노르만프랑스어에 눌려 이른바 일종의 복류(伏流)로 화했었던 영어가, 토어적(土語的)인 존재로서 다시 세력을 되찾아 등장하게 된 것은 14세기가 되어서였다. 즉, <법정에서의 사용언어는 영어로 정한다>는 법령이 공포된 1362년은 영어의 복권(復權)을 상징하는 기념할 만한 해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무렵의 영어는 이미 굴절어미의 대부분이 붕괴되었고, 영국의 문예부흥기와 겹쳐져 근대영어의 개막을 맞이하게 되었다. 근대영어기는 초기 근대영어기(1500∼1700), 후기 근대영어기(1700∼1900), 현대영어기(1900∼현재)라는 세 시기로 하위구분(下位區分)된다. 초기 근대영어와 후기 근대영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중기영어에서 초기 근대영어에 결쳐 생긴 <대모음추이(大母音推移)>라고 불리는 큰 음변화 현상의 일단락과 대략 현대영어와 같은 철자관습의 확립이다. 또 형태론적 특징과 통어론적(統語論的) 특징도 18세기, 즉 후기 근대영어의 시기에 들어가면, 그 대강은 현대영어와 거의 틀리지 않게 된다. 근대영어를 크게 특징짓고 있는 것은, 다양하고 많은 양의 라틴계의 차용어(借用語)와 영어의 분석언어적 성격이다. 영어의 역사를 단적으로 말하면, 종합적 언어에서 분석적 언어로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즉 그 역사는, 고기영어기의 복잡한 어형변화를 가지는 언어로부터 어형변화가 간단하며 문법관계를 어순이나 전치사와 같은 기능어(機能語)로써 나타내는 현대영어로의 탈피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근대영어기가 되고 나서 발달한 것으로는 조동사의 체계가 있다. 또 <be+ing>에 의한 진행형이 확립된 것은 17세기에 들어와서이며, <be+being+과거분사>에 의한 수동진행형이 쓰이게 된 것은 18세기 말 무렵이다. 복잡한 굴절어미를 거의 다 떨쳐버린 영어는 굴절어미에 관한 한, 그 몫만큼 간단화되어 있는 셈이며, 일반적으로 영어는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언어라고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영어가 세계적인 규모로 널리 쓰이고, 일종의 국제보조어적 존재가 되기에 이른 것도, 영어권의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경제적 영향력과는 별도로 영어라는 언어의 구조적 측면에 그 원인의 일단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현대영어의 특색

철자

일반적으로 영어의 철자는 매우 불규칙하며, 단어의 음을 충실히 나타내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은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오해를 일으키기 쉬운 점을 몇 가지 내포하고 있다. 먼저, 영어의 철자는 뒤죽박죽이 아니라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뒤죽박죽이라면, 우선 외울 수가 없을 것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전혀 모르는 단어가 제시되어도 상당한 정도(精度)로 발음할 수가 있고, 그 반대도 또한 마찬가지여서 발음이 제시되면 단어의 철자를 쓸 수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규칙적인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 규칙성의 본질적인 부분은 <간접성>이라는 점에서 구할 수가 있을 것이다. 현대영어에서의 음성과 철자와의 대응관계는 확실히 발음부호와 이로써 표시되는 음과의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른바 일종의 보조선(補助線)과 같은 것을 보충해 주면 그 규칙성이 떠오르는 것이다. 즉, 현대영어의 발음은 초기 근대영어의 발음이 대모음추이라고 불리는 대규모의 음변화를 받은 결과 이루어진 것이다. 한편, 현대영어의 철자는 초기 근대영어기의 철자가 그대로 고정된 것이다. 더욱이 중기영어까지 소급하면 영어의 발음과 철자는 직접적인 대응관계를 나타내고 있었다. 앞에서 <일종의 보조선>이라고 한 것은, 실질적으로는 현대영어의 발음에서 대모음추이에 의한 음변화를 빼고 발음양식을 약 500년분 만큼 예전으로 돌려 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현대영어의 철자는 15세기 무렵의 영어 발음을 상당한 정도까지 <규칙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또 매우 불규칙적으로 생각되는 철자에는 각각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영어(American English)의 철자는 몇 가지 점에서 영국영어(British English)와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는 영어 전체로 보면 미미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또 미국식 철자법은 N. 웨브스터가 제안한 개혁의 몇 가지가 계속되는 것인데, 그 개혁은 신기(新奇)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 되도록 어원적으로 바르고, 유추하기 쉬운 철자를 의도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미국식 철자의 전형적 예라고 할 honor, labor, color 등은 라틴어의 honor, labor, color를 기초로 한 철자이며, center, meter 등은 number, chamber 등의 유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휘

영어의 어휘는 독일어나 프랑스어에 비하면 두드러지게 혼성적이다. 영어의 어휘를 게르만계·로망스계 및 기타의 셋으로 나누면 그 백분율은 대략 35:55:10이라고 하며, 본래어의 요소보다 외래계 언어의 요소 쪽이 많아졌다. 다만 사용도수라는 각도에서 보면, 게르만계 단어의 사용도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85%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영어는 전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로부터 차용하고 있으며, 더욱이 그 어수(語數)가 많은 것으로도 세계의 1, 2위를 다투는 언어로 생각되고 있다. 이 경우에도 정치적·경제적 요인과는 별도로 영어라는 언어가 그 굴절을 거의 잃고 있기 때문에, 또 표음성이 높은 알파벳에 의한 서기체계(書記體系)를 가지고 있으므로, 말하자면 그 문이 어떤 외국어의 유입에 대해서도 열려 있다는 구조적인 요인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된다. 굴절어미의 소실이라는 현상은 품사 사이의 전환을 쉽게 한다는 뜻밖의 결과까지 초래하고 있다. 명사를 그대로 동사로 쓰거나, 형용사를 그대로 동사로 쓰거나 하는 일이 현대영어에서는 아무런 이상함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언어에서 보면, 일종의 언어적 곡예이다. dust(먼지를 털다), water([나무나 풀에] 물을 주다, [위스키 등을] 물에 타다), book(예약하다), green(녹화하다) 등이 그런 예이다. 외래어도 같은 취급을 받기 때문에 예를 들면 karate는 <당수로 치다>라는 의미의 동사로도 쓰인다. 명사를 다른 명사 앞에 놓아 형용사적으로 쓰이는 경향도 현대영어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인데, pillow fight([아이들이 흔히 하는] 베개싸움), state university(주립대학), citizenship qualifications([시민권을 얻는 데에 필요한] 시민자격) 등의 예는 무수히 만들 수가 있으며, a clothes basket(세탁물 바구니), Boys Town(소년의 도시)에서 볼 수 있듯이, 명사의 복수형까지 형용사적으로 쓸 수가 있다. <명사+명사>의 결합은 혼히 <형용사+명사>의 결합과 마찬가지로 <제2강세+제1강세>의 형으로 발음되는데, 이것을 <제1강세+제3강세>의 형으로 발음하게 되면 복합어로 간주된다. 복합어는 전체가 하나의 단어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보면 pillow case(베개커버), station wagon(스테이션왜건) 등을 비롯하여 sports day(체육의 날), savings bond(저축채권), wages council(임금심의회) 등은 모두 복합어이다. 굴절어미의 소실에 의해서 가능해진 자유로운 품사의 전환은 영어에서 다채로운 어형성(語形成)을 뒷받침하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통어론(統語論)

분석적으로 된 현대영어는 굴절에 의한 어형변화가 거의 없다. 명사인 man을 예를 들면 man, man, men's, men's의 4형이 있을 뿐이며, 동사 drive의 경우에는 drive, drives, drove, driven, driving의 5형이 있다. 대명사에는 어느 정도의 굴절변화가 있지만 형용사에는 없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영어는 매우 간단한 언어라는 인상을 준다. 영어에는 문법이 없다는 사람조차 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영어는 처음에는 배우기 쉽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언어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간단한 어형변화와 복잡한 문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문법은 간단한 어형변화에 대한 대상(代償)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영어 문법의 핵심은 고정된 어순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⑴ The hunter killed the bear(그 사냥꾼은 그 곰을 죽였다)와 ⑵ The bear killed the hunter(그 곰은 그 사냥꾼을 죽였다)를 비교하면, 쓰인 단어는 똑같은데, ⑴ 과 ⑵ 는 죽임을 당한 대상이 전혀 다르다. 단어의 배열순이 간단한 경우, <주어+술어동사+목적어>의 형으로 고정되어 있으면, 전달 내용은 이 형에 맞추어 언어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달 내용은 대개 구정보(舊情報)와 신정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구정보라는 것은 화자(話者)가 상대가 이미 알고 있다고 간주하는 사항이며, 신정보라는 것은 상대가 모르고 있다고 간주하는 사항이다. 언어의 사용은 일반적으로 구정보라는, 이른바 <말뚝>에 신정보를 거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어떤 언어에 있어서도 언어인 이상 반드시 갖추고 있는 측면인데, 영어에서는 이것을 고정된 어순 속에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게다가 이것도 어떤 언어에서나 필요한 일이지만, 의문문·감탄문·명령문·평서문 등과 같이 말하는 사람이 상대에 대하여 어떤 자세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라든가, 자기가 말하고 있는 명제 내용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견해를 나타내는 양식(modality) 등도 모두 <주어+술어동사+목적어>라는 기본적인 어순을 지키면서 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영어의 문장구조가 현재와 같은 것이 되어 있는 것은 결국은 고정된 어순이 문법관계를 나타낸다는 특성으로 거의 환원시킬 수 있다. 한국어와 같이 어순이 비교적 자유롭고 문법관계는 나타내지 않으며, 어순의 결정은 오히려 어용론적(語用論的)으로 행해지는 형의 언어는 문장구조가 영어와는 매우 다른 특징을 나타내게 된다. 영어를 문법적 어순형 언어라고 한다면, 한국어는 어용론적 어순형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문법적 어순형인 영어에는 구문상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즉 ① 부정관사·정관사를 포함하는 한정사 체계의 발달 ② 문두의 위치를 차지하는, 의미 내용이 희박한 it이나 there를 포함하는 구문의 발달 ③ 특히 끼워 넣는 문장 속에서는 현저하게 구조를 바꾸는 일이 없는, 이른바 구조유지적 변형 조작의 발달 ④ 어순에 의한 주어 결정 ⑤ 수동변형, Tough 이동, It 치환변형(置換變形) 등과 같은, 새로운 주어를 만들어내는 변형의 발달 ⑥ 의사분열문(擬似分裂文)이나 분열문과 같은, 대개 전제가 되는 부분과 초점이 되는 부분을 통어적으로 명시하는 구문의 발달 등이 있다. 예를 들면 ④ 에 관해서는 ⑶ Over the fence is out([야구의 규칙 등에서 공에 관하여]담장 너머는 아웃이다)와 같은 문장을 참조할 수 있다. ⑤ 의 Tough 이동이라는 것은 ⑷ (a)It was not difficult to find you(당신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에서 (b)You were not difficult to find(당신은 곧 발견되었다)를 이끌어내는 것과 같은 조작을 말하며, lt 치환변형이라는 것은 ⑸ (a)It is likely that he will win에서 (b)He is likely to win(그가 이길 것 같다)를 끌어내는 것과 같은 조작을 말한다. ⑥ 의 의사분열문이라는 것은 ⑹ (a)John bought a car(존은 자동차를 샀다)에서 이끌어지는 (b)What John bought was a car(존이 산 것은 자동차였다)와 같은 문장을 말하며, 분열문이라는 것은 ⑹ (a)에서 끌어낼 수 있는 ⑹ (c)It was a car that John bought와 같은 문장을 말한다. ⑹ (c)와 같은 형의 문장은 한국어에는 없는 것으로, 굳이 번역하면 ⑹ (b)와 같이 된다. 또한 부정사·동명사·that절·파생명사화형 등이 잘 발달해 있는 것도 영어의 특색이며, 이러한 언어적 장치는 복잡한 의미 내용을 명사적 표현이라는, 이른바 캡슐 속에서 감싸서, 그것을 문장 속의 명사가 들어가게 되어 있는 위치에 끼워넣는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영어의 문장구조를 중층적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영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쓰이는 영어를 <미국어>라든가 <미어(美語;the American language)>라고 부르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미국영어>라고 하는 것이 좋다. 미국의 영어는 영어의 일종이며, 영어와 별개의 독립된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영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보면 미국에서 쓰이고 있는 영어 전부를 가리키는 셈이지만, 실제로 <미국영어>라는 용어가 쓰이는 것은, 그것이 영국 등의 영어와 다를 경우에 한정된다. 미국영어를 영국영어와 구별짓는 몇 가지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의 미국영어는 역사적으로는 1620년 영국으로부터 미국으로 건너간 필그림파더스(Pilgrim Fathers)의 영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역사적 사실이 가장 짙게 남아 있는 것은 현대 미국영어의 발음이다. 예를 들면, hot[hat] grass[græːs], boat[bout], secretary[sékrtèri], tune[tjuːn] 등과 같은 단어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미국영어식 발음은 어느 것이나 17세기 영국 표준영어의 발음양식을 전하고 있다. 또 권설음(捲舌音)인 [r]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신대륙에 특유한 동식물이나 풍물을 나타내는 어휘가 미국영어의 특색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통어론에 관한 한 영국·미국의 차이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I ^UN_ST^will^UN_ED^(1인칭 단순미래), We suggested that he ^UN_ST^leave^UN_ED^ at once(가정법 현재) 등의 용법이 눈에 띌 정도이다. 따라서 인쇄된 페이지의 자편(字面)을 보는 한에서는, 그것이 영국·미국의 어느 나라 사람에 의해서 씌어졌는가를 판정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Copyright ⓒ 2007 Yahoo! Korea Corp. All rights reserved.

낄틈없는 한국



낄 틈 없는 한국, 어디로…
 

 4일부터 9일까지 인도양 벵골 만에서 진행 중인 미국 일본 호주 등 5개국 연합 ‘말라바 2007’ 훈련에 참가한 일본 자위대 소속 구축함 ‘JS유다치’가 함대를 이끌고 작전을 펼치고 있다.


효석문화제 메밀꽃밭 장관











효석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강원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효석문화마을 일대 메밀꽃밭에 휴일인 9일 관광객들이 몰려 초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 (평창=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