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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7일 화요일

[사설] 人權 팔던 진보, 이자스민씨 향한 돌팔매 그냥 보고 있나

입력 : 2012.04.17 23:04 | 수정 : 2012.04.17 23:13


4·11 총선 후, 필리핀 출신으로 결혼과 함께 한국 국적을 취득한 새누리당 비례대표 이자스민씨(氏)를 헐뜯는 험담이 인터넷과 SNS에 흘러다녔다. "불법 체류자가 판치게 생겼다" "매매혼 가정을 위해 뼈 빠지게 벌어 낸 우리 세금이 거덜난다"는 상식 이하의 저질 비난과 이씨가 '이주민 천국을 약속했다'는 식의 날조된 중상모략이 나돌았다. 독버섯 같은 누리꾼들이 익명(匿名)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뱉어내는 더러운 말들은 그들의 입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공기를 혼탁하게 만들었다.

이자스민씨는 14년 전 한국으로 시집와 두 아이를 낳은 후 남편과 사별하고도 이주 여성을 돕는 모임의 사무총장을 지내며 꿋꿋하게 살아온 모범적 시민이다. 한국에는 이씨 같은 결혼 이주민이 20만명을 넘어섰다.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도 15만명에 이른다. 그들이 낳은 사랑하는 아들 수천명이 지금 이 순간 군에 복무하며 휴전선을 지키고 있다. 이번에 인터넷과 SNS의 귀퉁이에 숨어 이런 모범 시민들 등에 저주의 칼을 꽂는 비겁한 누리꾼들 가운데 병역의 의무를 다한 인간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미국으로 이민 간 김창준씨가 미국 하원의원이 되고 김용씨가 세계은행 총재가 된 걸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못난 인간들은 '한국의 김창준'이나 '한국의 김용'이란 목표를 품고 이 땅에 건너와 우리 시민이 된 이주민들을 향해 돌팔매를 서슴지 않는다.

세계 어디서나 진보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이주민 권리 보호에 앞장선다. 그게 진보의 윤리다. 그러나 우리 정치의 진보는 이런 진보의 세계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 이자스민씨에게 더러운 돌팔매가 날아오는데도 진보적 인사가 나서 몸으로 돌팔매를 막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일부 인사가 트윗에 이씨 비난을 자제해달라는 개인 글을 올렸을 뿐 지금까지 당 차원에선 논평조차 내지 않고 있다. 일부 야당 지지자들은 못난 인간들의 못난 짓에 가세하고 있는 판이다. 야당 성향 진중권씨가 "이자스민에게 악담하는 찌질이들 정리하지 않으면 대선도 희망 없다"고 걱정할 지경이다.

민주통합당 강령은 '이주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고 하고, 진보당 강령은 "이민 다문화 사회를 향한 전환과 국적 및 문화에 대한 선택권을 존중하고 모든 이주민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두 당은 이씨가 새누리당 소속이어서 예외(例外)라고 여기는 걸까.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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